초등학교 1학년. 포켓몬스터와 치킨을 제일 좋아하고 4살짜리 여동생 때문에 분노와 즐거움의 롤러코스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타는 아이. 자기보다 더 큰 가방을 메고 아직은 위태롭게 신호등을 건너 학교에 가는 아이.
8살 우리 큰애다.
또래 남자애들에 비해 감성이 풍부해 눈물도 많고, 4살 후반쯤 뒤늦게 트인 말이 지금은 청산유수다. 말을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휘 구사력이나 표현력이 좋아 보통 1-2살 많은 또래들 수준이다. 센스 있고 논리 있게 반박하고 들어올 때면 훈육하는 엄마 입장에서 가끔은 얄미울 정도다.
어느 날 큰애와 단 둘이 외출에 나선 길이었다.
" 와 엄마와 단 둘만의 시간이다~!!"
동생이 생기고 나서 엄마와 단둘, 아빠와 단둘만의 시간에 매우 설레 하는 큰애의 얼굴을 보니 또 짠~ 하다.
"엄마 시간은 왜 있는 거야?"
"엄마 번개는 왜 생기는 거야?"
"엄마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어?"
"엄마 소율이가 나보다 먼저 태어났으면 엄마는 누구를 더 사랑했을 것 같아?"
8살이 되자 질문의 난이도가 높아져 바로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다. 동생이 생기고 난 후 나이차가 조금 있어서 그런지 심하게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이렇게 엄마, 아빠의 첫사랑은 자기임을 확인하는 질문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다 아이의 입에서 '꿈'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엄마 내 꿈이 뭔지 알아?"
꿈? 큰애와 꿈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이 아이가 꿈을 알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서도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학창 시절 장래희망이 뭐예요 라는 질문에 '판사' '의사' '선생님'이라고 대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경찰?"
경찰공무원인 엄마, 아빠를 참 자랑스러워했고 아들에게 가장 친숙한 직업이었다.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직업'이라며 엄청난 일을 하는 것처럼 포장돼있었던 차라 살짝 기대감도 있었다.
승용차 뒷자리에서 창문 밖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아들이 대답했다.
" 엄마, 내 꿈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거야"
순간, 온몸이 멈칫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손도, 웃고 있던 얼굴도, 머릿속의 생각들도 일시 멈춤 상태가 되었다.
와...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었다.
"와~~ 아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됐어?"
"엄마,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친구라고 생각해봐. 여기 가도 친구 저기 가도 친구 얼마나 즐겁겠어~!!"
"와 정말 멋진 꿈이다 아들~! 엄마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꿈이야. 아직 이 세상에 그 꿈을 이룬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우리 아들이 최초로 그 꿈을 이룬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너무 멋지다 아들!!"
유난히도 친구를 좋아했던 아이였다.
지나다 아는 친구를 만나면 꼭 먼저 반갑게 달려가 인사를 했고, 등굣길에 저 멀리 친구가 오는 게 보이면 발을 동동거리며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같이 가곤 했다. 유치원 졸업앨범을 넘기며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히고, 친구들과 놀이에 푹 빠져있으면 엄마가 아무리 불러도 듣지 못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여러 가지로 만남에 제한적이다 보니 제대로 친구를 못 사귀고 있었는데, 친구에 대한 그림움이 아이의 꿈으로 나타난 것일까, 엄마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꿈이란무엇일까.
우리에게 꿈이란 무엇이었을까?
우리에게 꿈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취직을 하거나 전문직종을 갖거나 장사를 하거나, 이처럼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 것인가였다. 이 사회에서 직업군으로 분류돼 있는 수만 가지 직업 중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안정적인 직업, 거기다 고소득을 보장해 주는 직업을 갖게 되다면 그것이야 말로 꿈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꿈이라는 것은 곧 직업이었고, 그 꿈은 나에게 집중돼 있었다.
적성에 맞는 일인가? 보람을 느끼는 직업인가?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인가?
사람들은 기계처럼 생각 없이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다 이와 같은 질문들로 직업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고, 지금은 '욜로' '가족' '나' '행복' '자연친화'와 같은 삶의 지표들도 많이 바뀌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그 의미와 목표는 나와 가족만 향하고 있을 뿐이다.
성별, 피부색, 돈, 기술, 계급이 권력이 되어 차별을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고 경쟁하고, 심지어 무너뜨려 야한 대상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아직 차별이 무엇인지, 경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냥 '친구'였다.
나 말고 타인으로 시선을 바꾸어 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꿈, 나와 가족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꿈,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는 옛말의진정한 의미는 이게 아닐까
'세상은 서로의 차이를 서럽도록 강조하고 우리는 서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은 오싹할 정도로 차갑게 흘러가지만 '우리'가 될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나누고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_ 정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