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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Oct 23. 2021

엄마가 적성에 맞으시나요?

엄마가 어설픈 모든 엄마들에게




몇 년 전 예능프로에 오랜만에 가수 이수영이 나왔다.

그녀는 2000년대 수십 곡의 히트곡을 내며 당시 독보적으로 인기를 떨치다 결혼과 동시에 사라졌었다.


몇 년 만에 예능에 나온 이수영에게 MC인 김구라가 이것저것 근황을 물어보다 육아에 대해 질문했다.


김구라 : 이수영 씨, 내가 이수영 씨를 좀 아는데... 육아가 적성에 맞으세요?

이수영 :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니... 적성에 안 맞으면 안 할 거예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적성에 맞는지는 일단 해봐야 알겠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적당히 고민하다, 남들 다 하는 일이니 나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엄마가 된다.


여자로 태어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누구든지 엄마가 된다. 엄마라는 역할은 그냥 자연스럽게 여자라면 누구가 겪어야 하는 삶의 과정이었다. 이 세상의 반은 엄마인 것 같고 나도 엄마가 있다. 남편도 엄마가 있고 그 엄마의 엄마도 있다. 엄마가 없으면 인류는 망한다. 새삼 엄마라는 존재가 참 막강하다.


감히 엄마라는 역할이 무엇인지,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내 생활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도 못한 채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니, 주어지면 다 한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엄마가 된다. 그러나 엄마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다이나믹하고, 힘에 부치고, 어렵다. 대부분 상상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된다.



임신도 체질이라니..


임신을 하면 누구나 출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을 겪는다. 한 생명을 얻는 숭고한 일이라고는 하나 총을 맞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라는데, 꼭 그런 고통을 감내하고 숭고함을 얻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만 혼자 생각하고 말아야지 입 밖으로 꺼내면 졸지에 생각 없는 엄마가 되기 쉽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친구는 콧구멍에서 수박을 꺼낸다고 생각하면 딱이라고 했다. 콧구멍에서 수박을 꺼내다니.. 그럼 그 콧구멍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생각하기도 겁나는 끔찍한 현실이다.


친정엄마는 만 이틀 진통을 겪다 집에서 나를 낳았다고 했다. 1980년 당시만 해도 대부분 병원에서 출산을 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시댁 눈칫밥으로 살고 있던 새댁은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면서 병원에 가자는 말을 못 했다.


친구 중 하나는 만 이틀 진통 끝에 제왕절개를 했다. 자연분만을 해야 아이가 똑똑하고 건강하다는 시댁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결국 의사의 설득으로 제왕절개를 했다고 했다.


직장동료 중 하나는 아이를 낳다가 피가 멈추지 않아 종합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아찔한 경험을 했고 당시 담당 간호사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산모님은 이제 아이 낳지 마세요 한번 더 낳으면 큰일 나겠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애는 목숨 정도는 내놓고 낳아야 한다.


반면에 진통 1시간 만에 출산을 했다, 몇 번 힘을 주니 아이가 쑥~ 나왔다는 비교적 수월한 출산 스토리도 있다. 친구 중 하나는 아이 둘을 낳았는데 둘 다 진통 1-2시간 만에 자연분만을 했고, 출산 후 우리에게 딱 한마디 던졌다.


" 야~ 할만해, 난 임신이 체질인가 봐 "


100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잔다르크도 저보다 위풍당당하진 않으리! 인류가 겪는 손꼽히는 고통 중 하나인 출산의 고통을 두고 할 만하다니, 임신이 체질이라니, 고등학교 때부터 봐왔던 그 친구가 그때처럼 대단해 보인적은 없었다.


아이를 배에 품고 있는 40주 동안 산모들은 다양한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내 뱃속에 장기들 말고, 새 생명이, 그것도 사람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에 대한 놀라움도 잠시, 물만 먹어도 토하는 입덧과 뱃가죽이 찢어지고 제대로 서있기도, 누워있기도 힘든 고통을 겪으며 생명의 신비로움 따위는 머릿속에서 금세 잊히고 만다.


유난히도 힘든 임신과 출산을 겪은 친구는 8개월 동안 입덧을 해 병원에 입원을 하고, 둘째 임신 중 첫째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저혈당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고 했다. 둘째를 39살에 출산한 나는 주차별 진행되는 검사에서 단 한 번도 정상 판정을 받은 적이 없었다. 갑상선도 이상, 임신성 당뇨 검사도 이상으로 고위험 산모로 분류됐다. 임신기간 동안 호르몬 약을 먹고 인슐린을 맞으며 혈당을 조절했다. 임당 판정을 받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댔고 혈당기 숫자에 일희일비했다. 식후 혈당을 낮추기 위해 밑으로 뭐가 쏟아질 것 같은 몸뚱이로 출산 직전까지 공원을 걸었다. 반면 애 낳는 게 할만하다던 그 친구는 입덧도 거의 없고 임시 주차별로 시행되는 병원 검사에서도 특별한 이상 없이 특별한 고생이랄 것도 없이(우리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애 둘을 출산했다.


대한민국 부부의 15%가 난임이라는 요즘, 죽었다 살아났다는 출산고를 겪는 산모들에 비하면, 임신이 체질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체질적으로는 엄마 적성이 딱이다.






모유수유도 능력이다?!


39세에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가니 많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완모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초유는 꼭 먹여야 하고 많이 먹일수록 젖이 많이 돈다고 하니 낮, 밤 할 거 없이 2시간마다 꼬박꼬박 수유 콜에 몸을 일으키는 산모들, 젖 물리는 자세를 잡지 못해 뒤집었다 방향을 바꾸었다 고군분투하는 산모들.. 체질에 따라 모유 양도 각각 달라 미리 유축해둔 젖이 많으면 새벽 수유 콜은 패스가 가능하다. 잠도 포기하고 새벽 수유를 하다니.. 산모들이 몸조리하기 위해 들어온 곳 아니었던가?


신랑은 둘째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사진을 찍었다.평소 별로 사진을 찍지 않던 남편의 눈에는 그 모습이 예뻐 보였나 보다.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머리는 며칠째 감지 못해 떡져있는 산발에, 삐쩍 마르고 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누렇게 뜬 얼굴을 한 어떤 심란한 여자가 다 늘어진 원피스를 입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허걱.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의 사진이 이래도 되나? 아름다워야 맞지 않나? 조용히 삭제 버튼을 눌렀다


첫째 때도 젖양이 많지 않았고, 삐쩍 마른 몸에 아스팔트에 껌딱지 같은 작은 가슴의 내가 젖양많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밤엔 잠을 잤고 낮에도 적당히 수유했다.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젖을 물리는 것도 수월하고 산모 생활도 익숙했던 터라 집에 돌아와서도 모유를 계속 이어갔다.


그때 집에 오신 산후도우미는 젖이 나오는데 왜 분유를 먹이냐며 '완모 할 거죠?'라고 물으셨다.


"저는 젖이 많지 않아서요.. 큰애도 분유 먹였고 하고 싶어도 못해요"

" 젖이 많지 않다고요? 그건 내가 알지~ 이 정도면 충분해요!! 내가 도와줄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해!!"

"(아.. 저는 그 노력이라는 것을... 굳이 하면서까지 완모를... 하고 싶지는...) 아 그런가요?"


조금만 모유를 먹이다 분유로 갈아타야지 싶었는데 60일 정도 지났을까? 잠깐 방심한 사이 둘째가 젖병을 거부했다. 오 마이 갓~!!! 모유수유를 피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와 떨어지기 어려워 외출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모유수유를 이어갔고 2시간마다 허기진 상태가 찾아오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밥, 빵, 과일 할 것 없이 엄청 먹어댔지만 2시간만 지나면 너무 배가 고팠다. 모유는 빠진 양 보다 더 많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언빌리버블!! 나에게 세상 유일무이한 모유가 이렇게 많이 생성되다니.. 젖양은 엄마의 체격이나 가슴 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아이를 키우기 충분한 양의 모유가 계속 나왔고 그렇게 나는 위풍당당 완모 완장을 찼다.



엄마에게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그것! 놀아주기


큰애가 8살, 둘째가 4살이다. 아이 둘을 키우며 용케도 8년이 지났다. 큰 탈 없이 둘 다 건강하게 평균 수준으로 잘 자라줬다. 나도 뭐 이쯤이면 보통 엄마는 되는 것 같다. 다른 엄마들만큼 맛있는 음식을 척척 해내지도 못하고, 일한답시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조기교육에 열의를 갖고 좋은 학습지나 학원을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초등학생인 큰애 숙제하나 봐주는 것도 벅찬 상황이다.


중간만 하자, 나름 애쓰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아이들에게 제일 못해주는 게 있다. 바로 놀아주기다.


코로나 시국, 외출하기도 친구들을 만나기도 힘든 상황인지라 그 어느 때보다 부모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시기다. 이렇게 잘 알고 있건만, 배운 대로 아는 대로 실천하며 살기란 너도 나도 참 쉽지 않다. 신랑은 그나마 큰애와 축구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종종 게임도 하지만, 엄마인 나는 특히 아들인 큰애와 놀아주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큰애는 5살 무렵부터 변신로봇과 동물 피겨들을 가지고 역할놀이에 푹 빠졌다. 당시 유행하던 헬로카봇과 공룡 메카드 같은 만화를 즐겨 보더니 시시때때로 엄마를 붙잡고 같이 놀자고 했다. 변신로봇들은 매일매일 전쟁을 치러야 했고, 동물 피겨들은 허구한 날 영역싸움을 벌였다. 등장인물은 많은데 사람은 2명뿐이라 캐릭터마다 목소리도 달리 해야 했다.


동심의 세계가 이리도 어려운 일인가?

나는 좀처럼 아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대본도 없는 이 상황극을 아이가 원하는 대로 실감 나는 목소리와 상황 설정을 이어가야 했지만, 혼자 차 안에서 노래 부르는 것조차도 어색해하는 엄마인지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누가 공무원 아니랄까 봐 창의성, 예술성 이런 감각세포는 애초부터 나에게는 없는 것들이었다. 아이는 답답해하며 엄마에게 대사를 만들어 주기 시작했고 그조차도 엄마가 잘 살리지 못하니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결국 아이도 엄마가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자는 것도 공놀이를 하자는 것도 버거웠다. 아이가 제안하는 놀이에 엄마는 동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조금만 뛰어놀아도 숨이 찼다.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놀이터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한 번은 아이와 함께 그네를 타다 현기증이 나서 당황스러웠다. T익스프레스, 바이킹을 몇 번씩 타면서 스릴을 만킥했던 내가 불혹을 넘기니 놀이터 그네 몇 번에 현기증이라니,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벌써 와닿을 줄이야, 애처로우면서 힘에 부쳤다.  


그 무렵,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유독 아들과 신나게 놀아주는 아빠가 있었다. 아이를 하원 시키면 꼭 어린이집 놀이터 또는 바로 옆 공터에서 아들과 공놀이를 하고 잡기 놀이를 했다. 아이를 달래주려고 적당히 놀아주는 게 아니었다. 게임의 방식을 정하는 것도 진지했고, 가위바위보도 진지했다. 아빠는 아이와 매우 진지하게 놀이에 임했고 아들을 피해 도망갈 때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어린이집 아이들 여러 명과도 서스름 없이 어울려 편을 가르고 놀이를 주도해, 아이들 모두 놀이의 재미에 푹 빠질 수 있게 만들었다. 어른과 아이가 아닌, 그냥 유치원생들이 뛰어노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누구보다도 7살 그 아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부러웠다. 나에게 없는 그 아빠의 능력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내 오른손을 잡고 서있던 큰애는 뻘뻘 땀을 흘리며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있는 7살 형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그 눈은 '엄마 나도 저기 가서 놀면 안 돼?'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담고 있었다.  





최고 능력 있는 엄마는 요리 잘하는 엄마


엄마로서 능력을 가장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는 바로 요리다. 집 나간 남편도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내의 음식 솜씨라고 하니, 요리 잘하는 엄마는 여러 가지로 유리하고 인정받기 쉽다. 요리는 필수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다. 사람이라면 하루 3끼를 먹어야 하고, 끼니는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다. 사람을 낳아놨으니 먹여서 키워야 한다. 하기 싫다고, 못한다고 건너뛸 수가 없는 일이다. 매 순간 산소가 몸에 공급되는 것처럼 엄마들은 아이들의 입속으로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등 5대 영양소를 골고루 집어넣어줘야 한다.


결혼 전 라면과 계란 프라이밖에 할 줄 모르던 내가 지금은 꽃게탕을 끓인다. (꽃게탕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난도 음식이다) 시아버지 생신에는 잡채도 해봤다. 네이버가 나를 구했다. 네이버에는 모든 음식 만드는 법이 친절하게 설명돼 있었고 그중 백종원 아저씨 방식은 실패 확률이 거의 없었다. 네이버만 충실히 따라도 중간은 간다.


그런데 네이버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하면서도 쓸데없는 고집이 생긴다. 자꾸만 내 감이 맞을 것 같은, 그래서 간장 3스푼을 2스푼만, 설탕 2스푼을 1스푼만, 자꾸 레시피를 무시하고 감 따위를 요리에 첨가시켜 결국 실패하는 일이 잦다. 요리실력이 없으면 말이나 잘 들을 것이지, 알면서도 잘 안 고쳐진다.


한 번은 오므라이스 소스를 만드는데 네이버에서는 '루'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조금 넣으라고 돼있었다. 집에 밀가루가 없었다. 이와 비슷한 게 뭐가 있을까. 부침가루, 튀김가루, 전분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셋 중 뭘 대신 넣어야 될까? 가장 곱게 갈려 엄청 부드러울 것 같은 전분을 집어 들었다. 오므라이스 소스도 약간 걸쭉하게 만들어야 하니 전분을 조금 넣어보자,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너무 쉽게 했다. 혹시 몰라 카톡방에 질문을 날리자 육달(육아의 달인) 친구의 답변이 날아왔었다.


나 : 오므라이스 소스 만드는데 밀가루 대신 전분가루 넣어도 될까?

육달 : 못 먹어

나 : 이미 넣었는데...

육달 : 버려


프라이팬에 전을 부치면서 뒤집기를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다. 부침개를 전 밑으로 집어넣는 순간 이번에도 실패임을 바로 알게 된다. 때도 못 맞추고 센스도 없고 소질도 없다. 밀가루 대신 전분가루라니, 기본이 안되있다. 그 흔한 볶음밥 간 맞추는 게 왜 이리 힘든 걸까?


오므라이스, 잡채, 된장국, 제육볶음, 닭볶음탕.. 척척 음식을 해내는 친구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솔직히 부러운 능력이다. 음식은 꼭 엄마라서기 보다도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하루 3끼를 먹고살아야 하는 동물이기에 가족 중 음식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점이 참 많다.


음식을 못해도 예쁘게 담아서는 먹고 싶다. 그러나 플레이팅도 그릇만 산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 음식의 종류와 양과 색깔에 어울리는 적당한 그릇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이래저래 요리도, 집안일도 참 서툴고 요령도 없다.






엄마가 적성에 맞으시나요?


5명의 고등학교 절친이 있다. 다들 비슷한 과정을 거쳐 한 가정의 엄마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모습은 모두 다르다.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밥을 하고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며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에서 행복을 찾는 가족중심적인 친구, 가족도 가족이지만 나 자신도 중요하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자기 계발에 시간을 쏟는 친구, 남편이고 자식들이고 다 지겨워 죽겠다며 벌써부터 졸혼 얘기를 꺼내고 있지만 말로만 끝날 것 같은 친구..


엄마가 적성에 맞으시나요?

이런 질문은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조금 부담스럽다.

'난 엄마가 적성에 안 맞아요'라고 답하면 왠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돌이 날아올 것 같다.


적성(適性)은, 맞을 적(適)에 성품 성(性) 자로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 또는 그와 같은 소질이나 성격을 말한다. 공부도 타고나야 하고, 미술도, 운동도, 노래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운동선수의 부모는 운동선수이거나 운동을 가르치시는 분이고, 배우의 부모는 배우이거나 감독일 가능성이 크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에 따라 타고난 재능이란 것은 분명 있다.


엄마가 요리도 못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도 못한다. 임신도 쉽지 않았지만 임산부 시절은 더 힘들었다. 남들은 없어서 못 먹이는 모유가 잘 나온다고 한숨을 쉰다. 전업 엄마는 나랑 맞지 않는다며 직장을 나가고,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을 찾겠다며 자꾸 책을 들고 카페나 간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가족들을 두고 혼자 여행을 떠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다지 엄마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엄마 적성에 딱 맞는 성격이나 소질은 무엇일까? 좋은 엄마의 롤모델이 있을까? 꼭 하나여야 하는 전형적인 모성애의 모습이 있을까? 그런 것은 없다.

이 세상의 100명의 엄마가 있다면 100개의 모성애가 있고 100개의 다른 엄마가 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은 각기 다른 엄마 적성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엄마의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100명의 엄마라 하더라도 하나 같이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바로 내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다.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이를 두고 급하게 화장실에 갔다가 마무리도 못하고 뛰쳐나오는 엄마, 밤새 40도를 웃돌며 열이 내리지 않아 아이를 업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엄마,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열이 떨어지지 않아 입원실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벌거벗은 아이의 몸을 연신 물수건으로 닦아내는 엄마,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아프다거나 다쳤다는 연락을 받고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는 엄마의 모습은 다 똑같다.  


내 아이를 처음 만난 날, 그 감동의 순간을 맞이하는 엄마의 모습도 비슷하다. 뼛조각이 산산이 부서지고 살이 찢겨나가는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엄마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너무 신기해 믿기 어려운 새 생명체가 품에 안기는 순간,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적성의 다른 의미가 있다. 적성(適性)이 아닌 적성(赤誠)이다. 붉을 적에, 정성 성이다. 적성(赤誠)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정성'이란 말이다.


엄마 적성(適性)에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일까?

엄마로서 갖춰야 할 가장 필요한 자질은 바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100명의 다른 모습의 엄마들도 모두 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 바로 내 아이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는 모습은 다 똑같다.


엄마로서 나는 너무 어설픈가? 자질이 없는것 같은가?

내 아이를 사랑한다면 이미 엄마로서의 적성(適性)은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엄마 적성(適性)을 엄마 적성(赤誠)으로 바꾸어 온 마음을 다해서 내 아이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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