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꿈이 직장으로 이어지고 남들 사는 것처럼 평범하게 한 남자의 아내로, 엄마로,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마흔이라는 나이를 맞았다. 기억 속에 흩어져 있는 과거들을 돌아보게 되고 한 번의 큰 숨을 들이마시며 잠시 쉬어가고자 했을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도전과 성취, 설렘과 열정의 순간을 좋아했던 나는 '엄마의 두 번째 꿈'이라는 열망을 가슴에 품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그때 만난 브런치는 오로지 나를 위해 준비된 놀이터 같았다. 작가라는 타이틀, 글만 쓰면 작품으로 만들어 주는 감동적인 기술, 같은 취향을 가진 글벗들, 카카오라는 거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성장 가능성, 출간 기회까지. 작가라는 두 번째 꿈을 키우는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꿈 메이트는 없었다.
코로나로 사람들과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온라인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소통의 거리는 제한이 없어졌다. 직접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말보다 사람들은 글을 더 찾게 됐고 브런치에 접속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조회수가 천 단위를 넘기는 첫 알림 문자를 받았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직장동료를 붙잡고 내 글의 조회수가 천을 넘었다며 상대가 어리둥절 하든 말든 발을 동동거리며 좋아했고, 처음 다음(daum) 메인에 노출이 됐을 때는 회사 사무실에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입을 틀어막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다음 메인 화면을 몇 번이고 보고 또 봤다.
브런치는 쳇바퀴 같았던 워킹맘의 일상에 짜릿한 균열을 만들었고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엄마 말고, 직장인 말고 진짜 '나'를 보여주고 인정받는 것 같아 묵은 삶에 새살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아차!' 싶은 순간이 왔다.
핑크빛 브런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한 번의 도전으로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는 공무원 시험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했던 순간, 지금의 남편에게 고백을 받았던 순간 이래로 10년 만의 가장 큰 설렘이었다. 브런치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테르담님도 3-4번의 탈락을 경험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네방네 떠들며 자랑하고 싶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별일도 아닌 일, 관심 밖의 그냥 남의 일 이기에 남편과 엄마에게만 소식을 전했다.
저녁에는 남편과 조촐한 축하파티도 열었다. 남편과 달리 엄마는 작가로 등단을 해서 책을 낸 것처럼 동네방네 소문을 내기 시작하셨다. 그게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고 말려봤지만 '자식 자랑'이 인생의 최대 즐거움이신 엄마는 그게 그거라며 머리에 한번 박힌 생각을 바꾸지 않으셨고 고향 친정동네에서 이미 나는 등단작가나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내가 카카오톡으로 링크를 보내줘야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다음 메인에 노출된 글과 조회수가 많이 나온 글을 몇 개 보내드렸다.
카카오톡을 통해 엄마에게 간 나의 브런치 글은 링크를 타고 엄마 친구들, 이모들, 동네 이웃들.. 급기야 교회 목사님까지 이어졌다. 아차 싶었지만 내 브런치 글을 계속 보기 위해서는 브런치 앱을 깔고 구독을 해야만 알림 문자가 가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 주변분들이 꾸준히 내 글을 읽는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브런치에서 알림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김 00(이모) 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박 00(교회 오빠) 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황 00(목사님)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몇 안 되는 구독자 중 반 이상이 가족, 친적, 지인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하.. 갑자기 뭔가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고구마 한 덩이가 목구멍에 들어차 있는 기분이었다.
한 번은 '마흔, 두 번째 꿈을 꾼다'는 글을 엄마에게 보내줬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지독하게 보냈던 수험생활과 당시 아빠 사업의 부도로 온 가족이 힘들었던 상황, 감동적인 합격의 순간들에 대한 글이었고,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한 글이었다. 당시 신림동에서 같이 생활하며 수험생활을 지켜봤던 친한 동생은 버스에서 내 글을 읽고 펑펑 울다 정류장을 놓쳤다면서 큰 공감리뷰를 전해주기도 했다.
나 또한 그 글을 쓰면서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 또 한 번의 간절함, 기쁨과 감동을 느꼈던 터라 같이 고생한 엄마도 나와 같은 감동을 느끼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엄마의 반응은 전혀 예상외의 문자로 도착했다.
문자 내용은 '글을 읽다 보니 서운한 게 있다, 왜 오랫동안 신앙생활 한 애가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내용이 없는지'라는 문자였다. 문자를 받은 순간,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온전히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글을 쓰는 방법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방법을 아직까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고, 글을 쓰면서 이런 나를 마주하고 성찰하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문제'를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문제를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시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 '문제'와 '좀 더 나은 삶' 사이에 문제를 보는 내가 있고, 좀 더 나은 삶을 찾아가는 여정에 글이 있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과의 추억, 회사에서 한 실수, 이성친구와의 사건들을 가족들에게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족이고, 친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고 알려지길 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페르소나를 소화하며 적당히 그에 맞는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하고 살아나간다. 각각의 페르소나는 개별적으로 보자면 굉장히 이성적일 확률이 크다. 그러나 개별 페르소나를 교차해 본다면 뭔가 맞지 않고 페르소나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직장 상사가 엄마로서 나의 모습을 본다고 상상해보라, 지금 막 사귀기 시작한 이성친구가 집에서 내 모습을 여과 없이 알게 된다고 생각해보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확실하길 바라지만 세상이 바라보는 나는 불확실하기를 바라는 게 사람이다. 세상과 나의 불확실성의 경계가 무너진다면 개인은 매우 큰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가족이나, 직장동료, 친구들이 내 글을 본다는 것은 그동안 그 사람들과 사이에서 만들어온 나의 페르소나가 매우 어지럽게 교차되고 경계가 무너지는 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중 가족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면서도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가장 잘 포장되어 있는 나, 세상의 기준에 잘 맞추어 살아가는 나를 잘했다, 대견하다며 부추기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다른 가족 구성원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 특히 부모가 내 자녀를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로 바라보기는 굉장히 어렵다. 오히려 장점만을 부각하고 단점도 장점으로 쉽게 변질시키는 게 가족이다.
브런치에서는 엄마로서의 나의 문제, 직장인으로서 나의 문제, 아내로서의 문제, 여자로서의 나의 문제들을 글로써 풀어내고 글을 쓰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그 근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사유와 성찰을 통해 조금 더 나은 나를 찾아간다.
하나의 페르소나로 나를 바라봤던 사람들이 브런치 글을 통해 나의 다양한 페르소나가 엮이고 꼬이는 교차점을 봤을 때 위로를 보낼지, 실망을 할지, 비웃을 지, 공감해줄지, 화가 날지, 연민의 감정을 느낄지,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정작 다양한 페르소나로 무장한 채 세상을 살아나가는 나에게는 견고하고 단단했던 장막이 원치 않게 풀어지고 어지럽혀지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각의 페르소나들이 모순적일지라도 그 충돌하는 페르소나들이 있어야 살아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