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실시하는 건강검진이었고 그동안 내 신체 기능의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는 결과였는데 올해는 정상범위를 벗어난 수치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적잖이 놀랐다.
갑상선, 위, 자궁, 뼈.. 노란 불이 들어온 항목마다 어렵게 쓰인 의학용어를 해석하기 위해 네이버 검색을 병행하며 결과지를 찬찬히 살폈다. 다행히 지금 당장 병원에 갈 정도로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결과지 뒷면에는 나의 종합건강지수와 기대수명까지 친절하게 나와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종합건강지수는 95점, 종합평가는 '매우 좋음'이었다.동일 나잇대 사람들의 결과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였는데 나는 상위 5%, 매우 좋음이었던 것. 허걱, 내가 상위 5%라니, 노란 불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말이다.
나의 진단병에 대해 네이버에서는 40대 여성의 40-50프로가 이 질환을 가지고 있고, 지금 당장 치료를 요하는 것도 아니니 정기검사를 통해 추적관찰을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안도감에 이어 조금 서글퍼졌다.
이제 내 나이가 되면 신체 장기와 뼈와 근육들이 점점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는 것, 한마디로 본격적으로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노란불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스러운 노화라지만 계속 예전처럼 살면 질병과 병원비의 고통이 함께 찾아오며 결국에는 병원 다니나 죽게 될 것이라는 것으로 들렸다.
이제는 그냥 마음먹은 대로 생각 없이 순간의 욕망에 이끌려 살아갈 일이 아니듯 했다.
잘 먹는 것 말고 좋은 것을 먹자
그냥 자지 말고 질 좋은 수면을 챙겨보자
혼자의 발견이라는 에세이에서 가장 깔끔하고도 무서운 욕이 '평생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사세요'라고 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좋은 음식을 먹고 질 좋은 수면을 챙겨야 한다.
불금이라고배달의 민족 앱을 켜고 영적인 허기짐을 먹는 걸로 채우려는 욕망, 일의 능률과 리프레시를 넘어서 일상의 지루함을 못 이기는 순간마다 커피를 찾아 하루 카페인 허용치를 초과해 버리는 커피중독에서 벗어나보려 한다.
베개 밑에 핸드폰을 넣어두고 잠들기 직전까지,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에 영혼을 빼앗겨 머리 따로 손따로 놀고 있는, 그것을 이제 끊어보려고한다.
잘 먹는다는 것은 적당히먹는 것, 그리고 영양이 풍부한 자연의 음식을 자주 먹는다는 것이다. 아무것이나 허겁지겁 입에 집어넣지 않는 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보로 최강매움 단계의 빨간 국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전날의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아침부터 얼큰한 해장국을 들이켜는 일을 삼가고 육류, 밀가루, 튀긴 음식 대신 생선, 달걀, 채소 등 건강식으로 식단을 바꾸기만 해도 위장은 바로 건강해진다.
백스의 래퍼 라비는 "고기와 밀가루를 멀리하면 오래 살 수 있지만, 그렇다면 딱히 오래 살 이유가 없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무릎을 탁 치며 먹는 즐거움에 대해 깊이 공감하기도 했지만 나는 즐기다 빨리 죽고 싶지는 않다. 100세 시대가 도래한 마당에 퇴직 후 제2의 직업도 꿈꾸고 있으며, 매일매일 병원진료와 약을 달고 사는 대신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멀리 여행도 다니는, 마음먹은 대로 몸도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100세를 맞이하고 싶다.
아침을 빠뜨리지 않고 쌀밥을 챙겨 먹고 있는데 그게 벌써 15년 차다. 처음 아침밥을 꼭 챙겨 먹었던 이유는 출근 후 달콤한 믹스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함이었다. 약한 위장 탓에 빈 속에 커피를 마시면 커피의 유당과 카페인이 그대로 위장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모닝커피를 위해 꼭 아침을 챙겨 먹은 것이 건강한 루틴이 돼버린 점은 감사할 일이지만, 어쨌든 직장인에게 모닝커피 한잔은 아침을 그것도 쌀밥으로 꼭 챙겨 먹게 한 꽤 즐거운 일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는 모닝커피 대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셔보기로 한다.
동그란 머그잔에 뜨거운 물을 받아 하얀 연기를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천천히, 내가 지금 먹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차의 좋은 기운이 내 몸으로 들어가는 것도 느끼면서 그렇게 커피 한잔을 차 한잔으로 대체해 보려고 한다.
그냥 자지 말고 질 좋은 수면을 챙겨보려 한다.
잠을 자는 것은 지친 내 몸을 회복시켜 내일을 건강하게 맞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간의 생존 본능 중 하나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들은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고, 잠을 자더라도 질 나쁜 수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성인의 적정 수면시간은 7-8시간이라고 한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면 기억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도덕적 판단이나 양심도 흐려지게 한다고 한다. 또한 아픈 곳이 더 많이 아픈 것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몸이 피곤해진다. 몸이 피곤하면 정신도 약해지기 마련,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짜증도 쉽게 올라온다.
그렇다면 우리의 수면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연코 스마트폰이다.
얼마 전 친구가 보내준 이모티몬 사진은 '스마트폰을 베개 옆에 두지 말라'는 메시지가 있었고 바로 다음 사진은 베개를 치우고 스마트폰만 머리 옆에 두고 잠들어 있는 사진이었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현상을 재밌게 표현한 것이었다.
가끔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스크롤을 넘기고 있는, 딱히 필요가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손이 가는 나를 보면서, 스마트폰에 점차 지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잠들기 직전 재밌는 유투는 영상이나 넷플릭스 시리즈에 빠지면 1~20분이 아니라 1~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수면시간이 1-2시간 단축되는 것만으로도 내 몸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최소 6시간 이상 자야겠다는 생각을 20년째 유지 중인데, 5시간을 자거나 6시간 푹 자지 못하면 내 몸에서 가장 상태가 안 좋은 위장에서 바로 신호가 온다. 아침부터 속이 쓰리고 소화도 잘 안되며 피로도가 쉽게 올라온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고민할 거리가 생기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캐모마일 티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스트레스 푼답시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마시기 전에 서랍장에 캐모마일티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맥주 대신 차 한잔으로 몸과 마음을 달래 보아야겠다.
질 좋은 수면을 챙기는 것만큼 좋은 휴식도 없을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넷플릭스 '재벌집 막내아들'에 빠져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내가 좋아하는 안주에 맥주 한잔을 곁들이는 야식시간을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을 먹고, 질 좋은 수면을 챙기는 것이 나의 건강한 루틴으로 언제 자리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건강함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마흔쯤의 우리는 그래야 한다.
계획적으로 그러나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지금이 내일을 이루는 바탕이 될 것이고 마음속에 품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꾸준하게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삶의 방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잘 먹는 것 말고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 그냥 자지 말고 질 좋은 수면을 챙겨 보는 것이 조금 더 단단한 나를 만들 것이고 건강한 50대를 맞이하기 위한 좋은 루틴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