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최소한 걸을 힘 정도는 남아 있다

<걷는 사람>, 하정우

by 내일도무사히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1만 걸음도 벅찬데 10만 보를 걷는다니!


오늘 하루 몇 걸음이나 걸으셨나요? 저는 밤 10시 현재 손목에 찬 웨어러블 기기를 보니 11,733 걸음 걸었네요. 이번 주엔 그래도 성적이 양호한 편이라, 일주일 중 1만 걸음 넘게 걸은 날이 사흘이나 됩니다만, 평소에는 하루나 이틀 넘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루 1만 걸음은 넘겼으면 하고 늘 염두에 두는데도 실천까지는 더딥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쉬고 이런 돌고 도는 일상 속에서 특히 사무실 근무를 많이 하는 분들은, 하루 1만 보 이상 걷는다는 게 쉽지 않을 때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 큰 맘먹고 사무실까지 걸어 올라간다거나(21층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해도 하루 수천 걸음에 그칠 때가 잦습니다. 그런데 여기 하루 3만 걸음은 예사로 걷는다 하고, 때로는 하루 10만 걸음에 도전하고 또 달성해낸다는 사람이 있네요. 세상에! 오늘 추천하는 책의 저자. “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그림 그리는 사람, 그리고 걷는 사람”, 하정우입니다. 책 제목은 <걷는 사람>.


*왜 ‘걷는 사람’일까


호모 에렉투스. 학창 시절 몇 번이고 들어 봤던 것 같은 이 진화의 한 단계에 나타난 인류 명칭은, 곧바로 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동물과 함께 네 발로 기던 인간이 두 발로 곧게 서면서, 양손을 자유롭게 쓰게 된 건,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게 한 인류의 크나큰 진보였습니다. 두 발로 서는 게 그러했고 두 발로 걷는다는 것도 그랬습니다. 허나 그건 100만 년 전 인류로, 이후엔 다른 특수한 사정이 없다면 대부분 사람들에게 두 발로 걷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왜 호모 사피엔스 하정우에게 ‘걷는 사람’이 자신을 규정하는 정체성 중 하나가 돼 버렸을까요.

호시우보(虎視牛步),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보고 소처럼 신중하게 걷겠다. 혼자 가는 열 걸음보다 함께 가는 한 걸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내가 걸으면 길이 된다… 이 문장들에 다 ‘걷다’가 포함돼 있으나 각각의 걷는 행위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고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고 처음 시작하는 단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하정우가 스스로를 ‘걷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건, 실은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게 읽힙니다. ‘걷는 사람’은 곧 ‘사는 사람’, 형용 모순 같긴 하지만요.


*이순신에겐 12척의 배... 우리에겐 걸을 만한 힘


"살다 보면 답이 없다는 말을 중얼거리게 만드는 문제들을 수없이 만난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 해결하고 싶은 조급함 때문에 좀처럼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답이 없을 때마다 나는 그저 걸었다.…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에겐 아직 최소한의 걸을 만한 힘 정도는 남아 있다."


배우인 아버지를 두고 무명배우로 시작해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배우까지 성장하면서 자신을 갈고닦은 방식, 또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상 배우에, 감독에, 영화 제작에, 그림까지 다양한 도전을 하면서 갖은 스트레스와 고민과 번뇌를 해소하기 위해 그가 택한 건 걷기, 또 먹기. 잘 먹으려면, 건강과 몸매 관리도 하면서 잘 먹기 위해서는 또 걸어야 하고, 많이 걸으면 배고프니까 먹고. 책을 보면 걷는 얘기를 한참 하다가 음식 해 먹는 얘기로 넘어갔다가 다시 걷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배우니까 가능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도 잠시 들지만 ‘내 방식으로 해볼 수 있겠네’ 싶습니다.


‘물 위를 걷는 법’이라는 우스갯소리 들어본 적 있으세요? 어느 책에서, 누가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대강 전하면 이렇습니다. 간단합니다. 먼저 물 위로 한 발을 내밀어 디딥니다. 그 발이 물에 빠져 들겠죠? 빠지기 전에 재빨리 다음 발을, 또 그 발이 빠지기 전에 다음 발을... 그렇게 반복하면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싱거운 농담이지만 불가능하다고 지레 포기하기 전에 일단 걸어보자로 해석하면 어떨까요.

"그냥 걸었어"라는 제목의 오래전 노래가 떠오릅니다. 처음 들었을 땐 터덜터덜 걷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걸었던 건 전화였습니다. 아무튼 “그냥 걸어보자고요, 걷다 보면 어떻게 됩니다”라는 게 하정우가 삶을 통해, 책을 통해 하고 있는 말입니다. 오늘 모처럼 1만 2천 걸음 걸어보니 저도 좀 그렇습니다. 복잡하고 고민 많은 회사일, 집안일... 그냥 걷다 보면, 무작정 걷고 보면 신기하게도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은 그런 경험. 한 번 도전해보시면 좋을 4월입니다.


마지막엔 뼈 때리는 글로! 하루 20쪽, 하루 30분... 아프네요.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나는 걷는다 1~3, 베르나르 올리비에

: 당장은 회사 근처나 동네 공원을 걷는데서 시작할지라도 꿈은 원대하게, 실크로드 대장정 정도는 바라볼 수 있겠죠?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1000일 넘게 마르코 폴로의 뒤를 쫓아 걸어간 63세 은퇴한 프랑스인 기자의 여정에 동행해보시죠.(저도 아직 1권만 읽었습니다만... 강추!)


*모 매체에 기고한 글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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