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내 어머니 이야기> 1~4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억지 결혼을 하고, 전쟁으로 부모와 생이별한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 살았지만... 결혼한 지 닷새 만에 해방이 되어 남편이 군대에 끌려 나가지 않게 됐다는 이유로, 해방된 게 너무도 싫었다는 엄마의 얘기도 ‘역사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인 역사와 엄마가 체험한 역사는 달랐지만, 주관적 체험이 지닌 신선함이 있었다.”
*엄마가 보고플 때... 우리 엄마, 내 어머니 이야기
엄마 얼굴 본 지가 두 달은 된 것 같습니다. 분가한 지 10년이 넘었고 자주 뵙지도 못합니다. 효자도, 살갑기는커녕 무뚝뚝한 아들내미지만 엄마는 언제나 내 편, 여전히 제1의 관심은 제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입니다. 어느 때부턴가 했던 얘기 또 하고 자주 잊어버리기도 하고 ‘일흔 넘은 노모’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나의 엄마.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만 한 가득입니다.(이 글을 쓰고 나서 그제꺼 뵈었습니다;;;)
5월, 가정의 달. 연중 한두 번이라도 부모님을 더 떠올리게 되는 어버이날이 오늘입니다. 우리 엄마도 50년 전엔 꽃다운 처녀였고 청춘이었으며 지금 제 나이보다 어릴 때 이미 자녀 2명을 책임지는 가장 노릇을 했었다는 걸 돌아보면 새삼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우리 엄마들은 다들 저마다의 역사를 갖고 있죠. 격동의 한국사 100년을 온몸으로 겪어낸 한 엄마의 생애사를 담은 책. 이렇게 써놓고 보니 조금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만화책! 이번에 추천하는 책은 김은성 작가의 <내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1908년 함경도부터 2014년 서울까지 격동의 100년사, 엄마의 100년사
이 책의 주인공은 김은성 작가의 어머니, 1927년생 이복동녀씨. 함경남도 북청 출신인데 흥남 철수 때 남으로 피난 오면서 가족과 헤어집니다. 그렇게 이산가족, 실향민이 된 복동녀씨는 충청남도 논산에 정착해 살았고 먼저 사망한 장남을 포함해 6남매를 슬하에 뒀는데 김 작가는 그중 막내딸로 논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북한에서 20여 년 살고 넘어와 남한에서 60여 년 살고 있지만 작가의 엄마 복동녀씨는 아직 함경도 사투리로 말하고 그때 어렵고 힘들지만 도타운 정을 갖고 엄마 아빠 오라비 언니와 정답게 살았던 추억이 선연합니다.
책의 시작은 복동녀, 집에서 부르는 이름으로는 놋새의 엄마, 작가에겐 외할머니인 이초샘씨가 처음 시집오는 1908년부터입니다. 그렇게 이 만화책 4권까지 완결되는 2014년까지 1백 년을 작가와 엄마가 등장하는 대목부터 엄마의 어린 시절과 피난 오던 즈음과 남한에서 갖은 고생을 하는 시절까지 흘러 흘러갑니다. 시이(함경도 사투리로 ‘언니’), 노래이 아바이(노랑이 할아버지), 어피덩(빨리), 임이(엄마) 등 구성진 함경도 사투리가 가득해 장 넘기기가 처음엔 수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입으로 가만히 발음해 보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고 실제로 짐작대로라는 신기함!
식사 시간, 집안의 유이한 남성인 아버지와 오빠는 독상을 받고 엄마와 딸 4명이 같은 상에서 밥 먹는 당시 풍경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우리 할머니도 저랬겠거니 싶고 “여자들끼리 먹는 게 더 편하다”는 엄마도 그랬겠지요. 읽다 보면 우리 엄마한테 엄마의 삶을 듣는다면 그걸 그려본다면 어떨까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전쟁 직전 태어난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하던 할머니를 대신해 장녀로서 동생들을 키우고 살림을 해야 했습니다. 오빠와 남동생들처럼 자기도 대학에 보내 달라했지만 소용없었고 결혼 이후에도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를 답답하다며 그만두고 뛰어든 사업에 실패하면서 수년간 벌이가 없던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아, 우리 엄마도... 읽는 내내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 내 인생도 잘 정리될 듯
"엄마의 팔십팔 년 인생을 그리는 데 내 인생 팔 년이 걸리다 보니 어떨 땐 좀 손해 보는 느낌도 있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도 내 인생을 잘 정리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마흔 넘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작가가 엄마의 생애를 만화화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 엄마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였다고 합니다. 엄마의 잔소리를 늘 귀찮아하면서 말로는 애틋하다 어쩌다 하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본 게 언제인지 아득합니다.
가장 쉬운 실천은 오늘 당장, 혹은 조만간 엄마를 찾아가 엄마의 옛이야기를 듣는 것. 또 하나는 <내 어머니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 저는 두 번 읽었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왜 이 책을 읽고 울었다면서 극찬한 건지 너무 잘 알겠습니다. 절판됐던 책이 올해 초 다시 복간됐습니다. 이제 저도 엄마 이야기를 들으러 가야겠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내 인생도 잘 정리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듭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옥남
강원도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가 30년에 걸쳐 쓴 일기 가운데 151편을 손자의 권유와 부지런함으로 묶어서 책으로 냈습니다. 글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가 시집살이 다 마치고 남편과 시어머니와 사별한 뒤 도라지 판 돈으로 산 공책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의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이 잔잔하고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모 매체에 기고한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