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더 많은 돈이 필요해!

<50대 사건으로 본 돈의 역사>, 홍춘욱

by 내일도무사히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삼국지, 프린세스 메이커, 대항해시대... 이들의 공통점은? 물론 게임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저의 연식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꽤 오래전에 나와 지금의 30대, 40대에게 하얗게 밤을 지새우게 했던 추억을 안겨 줬다는 것. 또 다른 공통점은... 유비, 조조, 손권 같은 후한 시대의 군벌로서, 혹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딸을 키우게 된 아버지로서, 배 한 척에 의지해 세계의 대양을 항해하며 다양한 항로를 개척하는 선장으로서 시뮬레이션 게임을 수행하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


현금질 얘기가 아닙니다.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인기가 있던 삼국지 게임만 봐도 그렇습니다. 기껏 통솔 90, 무력 90 이상에 지력마저 준수한 조운 같은 장군과 주유를 비롯한 군사로 수만 명의 부대를 편성, 출전했더라도 수송대가 털리게 된다면 결과는 참패! 소중한 딸을 기품 있고 매력 있는 공주로 키우고 싶지만 학원 보낼 돈이 없어 농장일만 주야장천 시켜야 했다든가.(프린세스 메이커) 당연한 것 같지만 때때로 간과하기 쉬운 돈의 중요성! 저는 게임으로 이걸 먼저 배웠습니다.


세계 역사의 주요 장면마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위인들이 등장하고 몰락하지만 그 이면에 빠지지 않는 건 언제나 돈. 오늘 추천하는 책은, 국내 최고의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면서 동시에 역사학을 전공해 ‘역덕’으로도 불리는 홍춘욱 박사의 <50대 사건으로 본 돈의 역사>입니다.


*나폴레옹 패배의 이유는 돈... 대영제국의 비밀 또한?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는 이 책 제1부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황제의 자리까지 오르고 유럽 대륙을 지배했던 나폴레옹에게 맞선 건 바다 건너 영국이었습니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쳐부숴 제해권을 장악한 넬슨 제독,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하면서 결국은 나폴레옹을 섬으로 유배 보낸 웰링턴 장군... 프랑스 전쟁 영웅에 맞선 이들 영국 영웅들 덕분에 전세가 역전됐던 건가 싶지만 배경을 살펴보면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프랑스보다 인구도 적고 경제규모도 작은 영국에서 막강한 해군과 육군을 육성할 수 있던 건 이를 위한 비용, 자금 조달이 원활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경쟁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의 금리 덕분에 풍부한 자금을 조성할 수 있었고 덕분에 실전 같은 훈련이 가능했다는 데서 영국군의 경쟁력이 탄생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금융으로 본 영국군의 비밀, 이후 대영제국으로 나아가는 비결이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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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중간에 실려 있는 도표입니다. 17세기 후반까지 10% 혹은 15% 이상까지 올라가 있던 영국의 국채 금리는 1988년 영국 명예혁명 이후 크게 떨어져 10%를 넘어서는 수준으로는 다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전까지 고금리였던 이유는 영국 왕실이 툭하면 채무불이행을 하는 등 ‘위험 프리미엄’이 붙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이런 왕실의 악습은 사라졌고(그렇게 빌린 돈을 떼어먹으면 왕에서 쫓겨난다는 걸 확실히 학습!) 새로 모셔온 왕은 네덜란드 출신 오렌지공이었습니다.


네덜란드식 금융을 도입한 것 또한 이 오렌지공, 월리엄 3세가 새 국왕이 되면서였습니다. 그럼 영국이 수입했다는 네덜란드식 금융이란 무엇일까요? ‘그건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다’면서 마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김성모식 전개 같지만 다음 장에서 이어집니다.(간단하게 말하면 ‘주식회사’입니다.) 이런 패턴은 이 책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그 장의 핵심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도표를 꼭 하나씩만 인용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렇게 나폴레옹과 넬슨으로 시작한 1부를 프랑스의 몰락으로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1부 마지막에 ‘교훈’을 요약합니다.


네덜란드와 영국 등 인구도 적은 나라가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신뢰’를 얻어 국민들로부턴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데 있다... 투자의 영역에 적용하자면, ‘금리가 높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한 권으로 보는 세계 금융사 느낌... <돈의 역사>


이렇게 마무리한 뒤 2부에서는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조선 옆의 중국 명나라로 훌쩍 건너옵니다. 조선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명나라 때 왜구가 창궐했던 이유로 시작해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이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펼쳐집니다. 세계사의 여러 사례가 나열되고 모이면서 2부 마지막에서는 화폐 공급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리합니다. 3부 맬서스와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4부 대공황, 아 대공황!, 5부 금본위제가 무너진 이후의 세상, 6부 일본 경제는 어떻게 무너졌나?, 그리고 7부에 오면 드디어! 1997년 우리나라는 왜?로 이어집니다.


17세기 이후 세계 금융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느낌입니다. 저처럼 역사는 어느 정도 좋아하지만 경제는 잘 모르고 금융은 더더욱 모르는 경알못에게는 새 지평이 열리는 느낌,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아니 이렇게 봐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구나.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우리는 그렇게 배워본 일이 없습니다. 세계사와 동양사 따로, 한국사는 또 따로. 경제는 잠깐만, 금융은 잘 모르겠고... 그렇게 파편화됐던 분야들이 국밥에 말아 훌훌 들이마시듯 어우러지고 맞물립니다.


그걸 차분하게, 가장 중요하게는 쉽게! 설명하고 글로 풀어내는 건 역시 저자의 내공 덕분 아닌가 합니다. ‘지나치게 생략한 거 아냐’ 하고 아쉬워할 독자들을 위해서는 각 장을 쓰기 위해 참고했던 책들의 목록까지 첨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1~5, 굽시니스트

어린 저에게 유럽을 알게 해 준 책이 <먼 나라 이웃나라>였다면 동아시아 근대사를 이렇게 재미있게 알려준 책은 단연 <본격 한중일 세계사>입니다. 주간지 ‘시사IN’에서 시사만화를 연재 중인 굽시니스트가 역사학 전공자답게 역사 만화를 연재했는데 별도의 스토리 작가 없이 이 모든 내용과 그림과 드립까지 혼자 일궈냈다는 데 경탄합니다. <돈의 역사>에서는 어쩌면 지나치게 간략하게 다룬 명, 청의 흥망과 일본, 제국 열강의 침략사 그리고 한국까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동아시아 근대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습니다.


*모 매체에 기고한 글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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