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의 대표작, 대표상품을 하나만 꼽으라면 아무래도 '예산회의록 전수 분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만 더 골라보라면... <성범죄 Trilogy 3부작>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불법촬영 대한민국의 민낯', '2019 청소년 성매매 리포트', '부부살인 보고서'... 2019년 선보였던 세 편의 시리즈다. 데이터저널리즘의 시행착오, 이번엔 이 성폭력 범죄 3부작이다.
'판결문 지옥'은 조금 전 내가 만든 말이다. 연구자 혹은 기자들이 무언가 결과물을 내기 위해 판결문을 분석하기 위한 지난한 작업을 일컫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전에 판결문을 구해보려면 법원도서관에 찾아가 제한된 시간 동안 검색, 열람하는 수밖에 없었다. 혹은 아는 판사를 통해 알음알음 구해보는 방법도 있긴 하다.
2019년 1월 1일부터 판결문 인터넷 열람 서비스가 시행됐다. 법원도서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개인 PC를 이용해 열람하는 게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과거보다 훠어어어어얼씬 개선된 것이다. 21세기가 된 지도 20년 가까이 지나서.
이 서비스는 국내 웹 브라우저 점유율이 7-8% 밖에 되지 않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작동한다.(크롬에선 안 된다!) 형사사건 판결문은 2013년, 민사사건은 2015년부터만 공개하고 있다. 한 번에 1년씩만 검색 가능하며 모든 판결문이 비실명 처리돼 있다. 이런 점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지만 결정적으로!! 판결문 1건에 1천 원, 돈을 받는다.(그래 놓고 한 번에 최대 5건만 결제 가능하다.) 경쟁 사이트가 하나 나와줬으면 좋겠다.
판결문 인터넷 열람 서비스가 시작됐다는 걸 알고 나서 뭐를 분석해볼까 궁리하고 있었다. 지금도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나 2019년 초는 더욱 그랬으니 뭐라도 먼저 분석하면 바로 기사였다. 2019 예산회의록 분석 보도를 마무리하고 나름대로 간단하게 3.1 운동 판결문 분석(이건 일제 판결문이라 성격이 좀 다르다)을 끝내고 초미세먼지 분석을 진행 중이었던 그때 3월 중순.
SBS 끝까지판다팀에서 정준영, 승리 등 연예인 불법촬영 범죄 사건을 한창 보도하고 있었다.(같은 회사에 있지만 이런 기사는 특히 다른 팀에서 먼저 알기 어렵다.) 아 불법촬영! 연예인들이 저 모양인데 그럼 보통 사람들은 어떨까? 저 연예인들이 특별히 더 나쁜 자들일 가능성보다는 많은 이들이 불법촬영을 범죄로 여기지 않고 있거나 범죄라고 보더라도 처벌이 높지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판결문으로 확인해볼까? 그렇게 '판결문 지옥'에 뛰어들었다.
판결문을 통해 보려는 건 사건의 전모와 함께 형량이었다. 불법촬영이라는 범죄에 대해 우리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 그걸 모아 보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대량의 판결문을 처음으로 분석하는 것인 만큼 다른 분석도 그렇지만 분석 대상을 명확히 설정해야 했다. 여기서는 어떤 죄명과 키워드를 넣어서 검색할지, 기간은 어떻게, 관할 법원은 어디까지를 다 정해야 했다.
불법촬영 죄는, 정확히는 성폭력범죄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14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위반이다. 판결문엔 통상 '카메라등이용촬영'이라고 나온다. 이걸 키워드로 넣고 2018년 1년을 검색해보니 판결문이 3천 건 넘게 나왔다. 많기도 하거니와 3천 건 열람하려면 3백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더군다나 이걸 몇 년 치를 한다면... 어쩌지?
당시 나는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한 직후였다. 논문은 아직도 못 썼으나 선행연구 검토 정도는 해봤기에, 옳지 선행연구를 찾아보자.
마침 한국여성변호사회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작성한 2011~2016, 2017년의 불법촬영 판결문 분석 보고서를 구할 수 있었다.(이걸 먼저 보고 나서 2018년 분석을 떠올린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2018년만 하면 되겠네 싶었지만 그래도 3천 건은 많았다.(3백만 원!!) 가만... 저 두 단체도 그런 고민을 안 했을 리가 없지. 분석 범위를 보니까 두 보고서 모두 서울의 5개 지방법원 1심 판결문이었다. 그렇지! 7백여 건으로 줄일 수 있었다.(70만 원..ㅜㅜ)
판결문을 전부 내려받아 확인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선고형 중에 '사형'이 있었다. 엥? 불법촬영 범죄에 사형이라고? 이 판결은 그 유명한 '어금니 아빠' 사건이었다. 피고의 죄명엔 살인, 청소년 성폭행, 추행, 시신 유기 등과 함께 불법촬영이 포함돼 있었다. 이걸 두고 불법촬영에 사형을 선고했다고 할 순 없는 노릇. 이외에도 죄명이 불법촬영만이 아닌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주된 범죄가 '카메라등 이용촬영'인 것만 다시 뽑아냈다. 그렇게 2018년 한 해 동안 불법촬영 범죄로 확정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1심 형량 비교를 위한 판결문 432건을 확정했다.
위에서처럼 정리하고 나니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착착 진행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하다가 다시 이전에 했던 작업을 폐기하고 다시 시작하고 또 뒤집어엎고 그런 일들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다소 과한 비유지만 '지옥'이었다.
암튼 그렇게 분석 대상을 확정하면서 우리가 세웠던 가설은 "불법촬영 사건의 형량은 (여전히) 높지 않을 것이다"였다. 그 가설이 입증될 것이라는 데에 대한 의구심은 없었다. 우리 분석 이전부터 개별 사건들 자체는 워낙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얼마나 달라진 게 없는지, 또 얼마나 무거운 처벌을 해야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그 기준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시민 참여형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궁리를 했는지는 다음 편에서 풀어보겠다.
*아래는 불법촬영 대한민국 기사 1편의 대표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