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은박 뚜껑을 벗기며 하나하나 디지털카메라에 담았다. 튜브 고추장은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가방에 챙겨 넣고 맥주와 콜라까지 야무지게 먹다 보니 긴 비행시간이 훌쩍 짧아져 있었다.”
위 글에서처럼 처음 기내식을 먹던 그 시간이 살짝 기억납니다. 물론 기내식의 맛도 궁금했지만 처음으로 기내식을 먹을 만큼 긴 여정을 비행기를 타고 떠났을 때의 설렘이 훨씬 컸던 듯합니다. 시간이 꽤 지났고 여러 항공사의 기내식을 비교하며 먹어볼 정도의 경험치가 쌓였지만 꽤 오래 비행기를 못 타고 있으니 그 설렘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니 기내식 체험 상품 같은 게 나왔겠죠.)
'아 떠나고 싶다'에서 '이제는 떠날 수 있다'가 됐는데 좀... 낯설어졌다고 할까요. 그동안 일상이 지겨워서, 아니면 비일상이 그리워서, 혹은 그냥 어딘가 지금 매일 하는 일과 사람과 환경에서 벗어나는 그 기분, 그 마음 때문에... 그랬다가 다들 여행을 떠나는 요즘에 못 그러고 있으니 여행에 대한 책을 골라 왔습니다.
"첫날 저녁, 해가 다 질 때까지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서 성급하게도 생각했다. 나는 이곳을 오래도록 그리워하겠구나. 지구 한편에 '아는 마을'이 있어 오래 따뜻하겠구나."
"많고 많은 일본 문인 중에서도 굳이 하야시 후미코를 좋아하고, 그가 살던 기념관을 찾아가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허탕을 친 한국인을 만날 확률은 대단할까? 잘 모르겠다면 이건 어떨까. 바로 그 한국인을 서울의 우리 동네에서 다시 마주칠 확률은. 딴 건 몰라도 이건 보통이 아니라고 떵떵거릴 수 있겠다."
말 그대로 십인십색입니다. 제가 읽어봤던 책의 작가도 있고 잘 모르는 작가도 있지만 여행의 장면은 저와도 겹치거나 겹치는 느낌이 있는 대목이 적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의 나는 일상의 나와는 왠지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게 여행의 매력 내지는 마력이기도 하죠.
한국인이 가능하면 없는 곳을 선호하거나 혹은 제가 유명인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여행지에선 새로 알게 되는 이들 말고는 누구도 나를 모르면 좋겠다는 마음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또 어려서 좋아했고 열광했던 것들이 나이 들어, 요즘 달라지거나 시들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것도 여행에서 새삼 느끼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 어찌 여행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매번 뜻대로, 기대대로는 안 되더라도 또 다른 여행과 일탈을 꿈꾸는 이유일 겁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된 소음이 설렘으로 다가오는 순간. 하루 3만 보를 걸으면서도 조금 더 걷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는 반짝이는 여행의 순간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가늠해보곤 한다. 세계의 안녕이든 나의 안녕이든, 이렇게 우연과 필연을 넘나들며 낯선 세계와 부딪히는 여유가 얼마나 남았을까. 이런 심산한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여행 짐을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