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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도무사히 Jan 22. 2024

읽는 존재와 먹는 존재가 만날 때.. <맛있는 소설>

북적북적 408 '맛있는 소설' 듣기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라는 질문도 이제는 답이 너무 뻔하다. 우리는 먹기 위해 산다. 아니, 사실 음식이 우리를 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먹는’ 존재다.”


2024년 새해, 그리고 1월. 계획과 결심의 시간입니다. 어떤 계획을, 무슨 결심을 하셨나요? 어영부영 해를 넘긴 저는 아직 근사한 계획을 세우거나 대단한 결심을 하진 못했습니다. 2024년이 익숙해지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다른 것보다 건강을 지키고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건 올해도 변함없습니다.


오늘의 책 표지를 보니 이런 카피가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몰랐는데 훅 꽂힙니다. 


'읽는 존재'와 '먹는 존재'가 만날 때.

어릴 적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에 매혹되고 한밤중, 하루키의 <빵가게 습격>을 읽다가 냉장고를 털고, <채식주의자> 때문에 육식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던 당신을 위한 소설 속 음식 이야기. 


이용재 음식평론가의 <맛있는 소설>입니다. 


여는 말 없이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는 직구형 책입니다. 제목엔 소설이 있지만 소설 아니라 소설 속 음식, 그리고 먹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습니다. 주욱 읽어보니 제가 읽어본 소설이 절반 정도, 이름과 내용은 대략 알지만 읽지는 않았던 책들이 절반 정도 되네요. 아 맞다, 나도 저 때 궁금했는데 싶으면서도 그러고 말았던 저 같은 일반 독자와 평론가이자 작가인 저자와의 차이가 많이 보이지만 그만큼 흥미롭습니다.


<작은 아씨들><채식주의자><컬러 퍼플><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달콤 쌈싸름한 초콜릿><영원한 이방인><아메리카나><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노인과 바다><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남아 있는 나날><모비 딕><바베트의 만찬>...


"어떤 궁금증은 해결하는 데 아주 긴 세월이 걸린다. 이삼십 년이라면 충분히 긴 세월이 아닐까? <작은 아씨들>의 '절인 라임' 이야기다. 네 자매의 막내 에이미가 학교에서 몰래 먹다가 꾸지람을 들었던 바로 그 라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86년에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처음 접하고 궁금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어쨌든 궁금했다. 아이들은 무슨 맛으로 이걸 학교에서 먹는 걸까? 왜 먹었다고 혼이 나는 걸까? 1980년대에 제대로 실체를 접한 적도 없는 레몬이 이미 미국에서는 1860년대에 절임으로 절찬리에 유행이었다는 점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작은 아씨들>과 절인 레몬의 진실'에서


"그렇지, 남부라면 비스킷이지. 햄, 그리츠, 달걀에 비스킷이지. 주인공인 셀리가 비스킷 이야기를 꺼내자 옛 추억이 떠올랐다. 따뜻하고 폭신한 딥 사우스 비스킷의 추억이다. 그렇게 소설에 빠져들려는데 다음 쪽에서 갑자기 격변이 일어난다. 갑자기 멀쩡하던 비스킷이 스콘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뭐라고? 충격에 몰입이 확 깨져 버린다. 스콘이라니? 스콘이라니!"

-'<컬러 퍼플>과 비스킷, 그리고 소울 푸드'에서


"왜 이 오이는 이다지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맥락 덕분인 것 같다. 정말 앞날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아픈 이와 수분을 한껏 머금은 아삭한 오이가 빚어내는 생기의 대조가 극적으로 느껴진다. 한쪽은 시들어 가는 생명, 다른 한쪽은 물이 오른 생명이다. 그래서 후자를 전자에게 먹이면 병이 단숨에 나아 벌떡 일어날 것 같다는 기이한 희망마저 품게 만든다.... 


하루키와 음식 세계의 팬들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오이가 조금 과장을 보태 하루키가 음식과 요리에 통달했다는 방증이라 여긴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하찮게 보일 법한 식재료를 최소한의 손길로 음식으로 승화한다는 것은 일상에서든 소설에서든 쉬운 일이 아니다."

-'오이 먹는 이야기, 혹은 10개의 키워드'에서


매일매일 업무와 가사 외을 제외하고 가장 큰 화두는 오늘 점심과 저녁은 도대체 뭐를 먹느냐입니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에서 작가가 단언했듯 이미 우리는 '먹는' 존재, 아니 저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읽는 존재와 먹는 존재가 이렇게 만난 책을 읽는 즐거움, 여기에 뭔가 맛난 걸 곁들인다면 더욱 그 즐거움이 커지겠죠? 다들 행복한 먹는 생활 하면 좋겠습니다.


**출판사 민음사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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