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이 대화의 반복이었다. 그러는 동안 내 몸무게가 조금씩 늘어갔고, 동시에 아이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찾아왔다. 물론 전과 같은 가족은 되지 못하지만,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거기에 있었다. 먹는 것은 사는 것의 기본이었다.
어느새 벚꽃도 엔딩에 다다르고 있고 여름에 가까운 봄으로 옮겨갔습니다. 나들이하기 좋은 시기, 이 짧은 휴일 어디서 보내면 즐거울까 궁리하는 재미가 늘었습니다. 주말 끼니도 그렇습니다.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이 점심 메뉴 선정이라지만 아무래도 회사 나오는 날은 업무와 걸쳐지는 면이 있죠. 온전히 즐거움과 생존이 섞인 고민을 하게 되는 게 주말 식사입니다. 저는 요즘 주말에 아이 식사를 만들어줄 때가 있는데 딱히 요리랄 게 없는 수준이지만 적당히 해줘도 맛있게 먹어주는 걸 보면 보람찹니다.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훅 와닿았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이름의 소설과 영화, 기억하는 분 있으실 거예요.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 각각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입장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재회하는 두 연인의 러브스토리를 같은 이름의 소설로 내서 꽤 화제가 됐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은 피렌체 관광의 필수 방문지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저도 10여 년 전 피렌체에 갔을 때 올라가 봤더랬죠. 암튼 두 작가의 소설을 다 읽었는데 저에겐 아무래도 남성 작가 쪽이 더, 그러니까 남주 쪽이 더 와닿았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 츠지 히토나리가 싱글 대디가 되어 아들에게 밥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의 요리법을 담고 있지만 단순한 요리책은 아니다. 초등학생 아이를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혼자 키운 아빠로서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즐거운지를 이야기하는 인생 지침서이자 친절한 레시피 모음집이다."
작가가 이혼했을 때 아들 나이는 열 살이었다고 합니다. 혼자 키우면서 음식을 만들어줬는데 그 레시피를 모아놨습니다. 실제로 따라하기 쉽게 적혀 있어서 이대로 하면 일본풍이 약간 가미된 프랑스 가정식을 만들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인생이 얼마나 즐거운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갖추면 좋을지를 조근조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게 요리를 가르치고 싶은 건 인생에 도피처 하나쯤은 만들어주고 싶어서야. 힘들 땐 언제든 이곳으로 도망쳐 오렴. 있잖아, 주방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나는 예전에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한테 모함을 당한 적이 있었단다. 아주 죽도록 당했지. 내 편은 적었고 난 어떻게든 널 키워야만 했어. 그때 날 구한 게 다름 아닌 주방이었던 거야.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고, 시간이 남아도는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아도 됐으니까. 부모란 그런 거야. 부모는 자식에게 약한 소리를 할 수 없지."
"오늘은 프랑스 신사 숙녀들이 옛날부터 특히 사랑해 온 핫치즈토스트, '크로크무슈'를 만들어 보기로 하자. 크로크무슈는 1910년에 파리 오페라 극장 근처 카페에서 시작된 음식이야. 하지만 평범한 크로크무슈는 재미없으니까 말이야, 위에 달걀프라이를 올린 '크로크마담'으로 해보자."
"최근에 나는 잠시 내 지난 생을 되돌아봤어. 그리고 정말 행복한 때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 그때는 그게 행복이란 걸 알지 못했던 게 너무 안타깝더라.
지금, 이 순간, 자기가 행복하다고 깨달을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 거야. 반대로 옆에서 보면 아주 행복해 보이는데 그 행복을 소홀히 하는 불행한 사람도 있어. 난 행복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토마토소스 오징어 알 아히요, 소고기 탈리아타, 민트와 잣을 곁들인 메밀국수 샐러드, 우리 집의 아메리칸 쿠키... 갈림길에서는 네가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해, 요리도 인생도 다 순서가 있어, 오늘도 유리병에 행복을 채워 놓을게... 요리 이름과 아들에게 들려주는 한 마디가 어우러진 각 장의 제목들이 근사합니다. 책으로만 보면 멋진 부자 관계인데 실제로도 그러하리라 짐작합니다.
꼭 아이가 아니라도, 배우자나 파트너에게, 혹은 친지에게, 또는 자신을 위한 요리 하나씩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이 맛있는 하루를,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런 마음으로 책 한 장 한 장을 넘겨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