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저널리즘팀 시절, 공들여 쓴 심층 기사가 포털 메인에서 순식간에 밀려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고역이었습니다. 반면, 누군가 5분 만에 받아쓴 가십성 기사나 사건사고 기사는 '많이 본 뉴스' 차트 상단을 견고하게 점령하곤 했죠.
"2019년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시리즈도 그랬습니다.
통상 방송기사 3배 분량인 6분 11초짜리 대형 방송리포트, 8편의 디지털 텍스트기사, 그리고 인터랙티브 페이지까지. 두 달 동안 참여한 인력을 다 합치면 20여 명에 이를 정도의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올해의 방송기자상과 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등 내외부 상을 6개나 수상했을 정도로 업계 평가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성적표는 처참했습니다. 가장 조회수가 높았던 방송리포트가 1만 9천 뷰, 디지털 텍스트기사는 5천 뷰조차 넘지 못했습니다. 포털에서의 반응은 사실상 '전무'했습니다.
저를 비롯해 이런 절망을 맛본 기자들은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조회수 경쟁 때문에 저널리즘이 망가지고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편집장'
'클릭 전쟁'의 시대도 여전히 유효하긴 하지만 사실 기자들을 정말 무력하게 만든 건 단순한 클릭 경쟁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지배'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뉴스룸의 풍경이 묘하게 바뀌었습니다.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는 건 더 이상 데스크(편집자)의 안목이 아니었습니다. 포털과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실질적인 '편집장' 노릇을 하기 시작했죠. 제목은 몇 자가 적당한지, 어떤 키워드를 넣어야 검색에 잘 걸리는지, 심지어 출고 타이밍까지 알고리즘의 비위를 맞춰야 했습니다.
수개월의 노력이 담긴 기사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해 '존재감 0'에 수렴할 때의 허탈함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는 편집의 주도권을 플랫폼에 '외주'로 준 결과였습니다. 기자가 독자를 보고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기계(알고리즘)를 보고 기사를 쓰는 기이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저널리즘팀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면서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읽히지 않는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무리 지고한 가치를 담은 기사라도 독자에게 닿지 않으면 세상에 어떤 파동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클릭은 독자가 우리에게 보낸 가장 솔직한 '관심의 영수증'입니다.
문제는 클릭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유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낚시성 제목이나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서술은 저널리즘을 망가뜨립니다. 하지만 클릭 데이터를 분석해 "독자들이 왜 이 대목에서 이탈했는지", "어떤 시각화가 정보를 더 명확히 전달했는지"를 고민하는 건 오히려 더 친절하고 정교한 저널리즘으로 가는 길입니다.
"독자들이 자극적인 기사만 좋아한다"라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가 고품격이라고 자처한 기사가 혹시 독자에게 '읽기 힘든 숙제'는 아니었는지 자문해야 했습니다.
*독자와 직접 만난다는 것
그래서 향한 곳이 있었습니. 알고리즘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와 '직접'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디어 업계에서 뉴스레터가 부활하고 유료 구독 모델이 화두가 된 건 단순한 유행이 아닙니다. 독자가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건네고 구독 버튼을 눌렀다는 건,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기사가 아니라 '당신의 안목을 믿고 선택하겠다'는 강력한 신뢰의 표시입니다.
포털이라는 거대한 광장에서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직접 찾아가는 관계. 이 직접적인 관계 안에서는 더 이상 알고리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를 선택한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만 고민하면 됩니다.
그 깨달음은 사실 씁쓸했습니다. 두 달을 쏟아부은 기사가 포털 메인에서 밀려나던 날, 문제가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