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말을 걸어왔을 때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제가 오래 기다린 자리였습니다.
두 번의 기회를 놓치고, 1년 2개월의 노조 전임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그리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팀은 이미 자리잡았고, 주변에선 "왜 굳이 저런 데로 가느냐"는 의아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내에서 데이터저널리즘팀은 그저 '변방의 영역' 정도로 치부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원했던 건 단순한 자리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15년 넘게 이어온 전통적인 방송 기자 생활에 일단락을 짓고, '기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데이터는 그 답을 향한 가장 근사한 취재 방식이었습니다.
*데이터로 기사를 쓴다는 것: 수천만 개의 행 사이에서 진실을 낚다
데이터저널리즘의 본령은 단순합니다. 그냥 봐서는 보이지 않던 거대한 진실을 수백만 개의 행과 열 사이에서 끄집어내는 일입니다.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으로 곧장 달려갔던 게 전통적인 방식이었다면 데이터저널리즘은 먼저 데이터를 찾습니다. 2019년 보도했던 "대한민국 음주살인 보고서" 시리즈가 그랬습니다. 12년간의 음주운전 사고 자료와 최근 5년 치 전국 경찰서별 음주운전 단속 자료를 수집해 분석했습니다.
읍면동 단위까지 쪼개어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가장 잦았던 지역을 찾아냈습니다. 그 숫자를 들고 현장에 나가 "왜 이곳인가"를 취재하니 기사의 뿌리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단단해졌습니다.
엑셀로도 많은 걸 할 수 있었지만 R과 파이썬은 더 많은 걸 가능하게 했습니다. "기자가 왜 코딩까지 해야 하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펜과 수첩은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기자에겐 새로운 무기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을요.
2년 반 동안 사내외에서 20여 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롱폼(Long-form) 디지털 기사와 방송 보도를 접목하며, 방송사의 데이터저널리즘이 나아갈 길을 조금씩 개척해 나갔던 뜨거운 시기였습니다.
*"좋은 기사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안 읽네요"
하지만 영광스러운 수상 실적 뒤에는 뼈아픈 진실이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좋은 기사"라고 호평했지만, 정작 독자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개월간 데이터를 찾고 분석하고 정교한 시각화 과정까지 거쳐 내놓은 결과물인데, 페이지뷰(PV)는 처참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왜 안 읽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어디서 독자가 이탈하는지, 어떤 포인트에서 흥미를 잃는지 분석할 도구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세상을 데이터로 들여다본다던 팀에서, 정작 우리 기사를 읽는 '독자'를 들여다보는 데이터는 전무했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독자는 알아서 찾아온다"는 공급자의 착각이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모른 채, 우리끼리만 아는 고상한 언어로 떠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독자가 누구인지,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처음으로 몸소 느낀 지점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가장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제가 데이터저널리즘에 발을 들였던 시기는 미디어 업계에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덮쳐왔던 때와 겹칩니다. 종이신문 판매는 급격히 줄었고, TV 시청률은 크게 흔들렸으며, 포털의 알고리즘이 어떤 기사가 읽힐지를 좌우하게 됐습니다. (다음에는 유튜브와 OTT의 시대가 왔습니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일은 이 변화의 속도를 매일 숫자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오래 기다려 간 그 자리는, 알고 보니 미디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꽤 앞줄에서 목격하는 관측소였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그 숫자 너머에 진짜 사람이 있다는 것.
데이터저널리즘팀에서의 2년 반은 단순한 취재 기법의 습득이 아니었습니다. 독자를 모른 채 만드는 콘텐츠는 공허하다는 것, 그 당연하고도 무거운 사실을 처음으로 배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