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모델, 같이 해볼래?"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한 마음은 반반이었습니다. 새로운 걸, 그것도 구독모델이라는 의미 있는 실험을 해본다는 설렘, 그리고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 넷플릭스나 쿠팡은 매달 결제한다지만, 기사에 돈을 내게 만든다? 그것도 뉴욕타임스 같은 압도적인 브랜드도 아니고 한국 언론사인 우리가?
'뉴스는 공공재'라는 생각도 걸렸습니다. 취재하고 써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 업의 본질인데, 돈을 내야만 볼 수 있게 벽을 만드는 게 괜찮을까 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막막함은 TF가 시작된 뒤에 찾아왔습니다.
*일개 파트의 조용한 실험이었다
구독모델은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해도 될까 말까 한 거대한 도전이자 전환입니다. 콘텐츠부터 기술, 마케팅, 결제 시스템까지 조직 전체가 한 방향을 봐야 합니다. 실제로 먼저 시작한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맞닥뜨린 현실은 달랐습니다. 신문 기반의 언론사와 방송 기반의 언론사라는 차이도 꽤 컸습니다. 방송에서의 보도는 여러 부문 중 하나였고, 회사의 수익 구조는 다른 부문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구독모델은 전사적 과제가 아니라 보도 부문의, 그중에서도 디지털 파트 중심의 조용한 실험에 가까웠습니다. 지원은 얇았고, 기존 문법을 고수하려는 저항은 완강했습니다.
좀 더 답답했던 건 '오늘'에 집중하면서 '내일'을 그리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구독모델을 하겠다고 모였지만, 아무도 3년 뒤, 5년 뒤까지 내다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장의 지표에 급급할 뿐, 미디어가 독자와 맺어야 할 장기적인 신뢰의 지도가 없었습니다.
* 광고가 독자를 밀어냈다
그럼에도 이 일을 놓을 수 없었던 건, 광고 기반 모델의 한계가 너무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광고가 주 수입원일 때, 미디어의 진짜 고객은 독자가 아니라 광고주였습니다. 독자는 광고주에게 보여줄 노출 숫자를 채워주는 존재였지, 직접 관계를 맺어야 할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독자를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알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구독모델은 그 구조를 뒤집습니다. 독자가 직접 돈을 내는 순간, 우리는 독자가 왜 이 미디어를 선택하는지, 무엇에 가치를 느끼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모르면 독자는 냉정하게 구독을 취소하니까요. 역설적이게도 이 상업적인 '구독'이라는 행위가, 미디어를 다시 독자 곁으로 끌어다 놓는 계기가 됩니다.
* 믿음이란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가
TF 일의 상당 부분은 뜻밖에도 '설득의 문장'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왜 우리 뉴스를 구독해야 하는가."
기자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 익숙하지, 가치를 설득하는 데는 서툽니다. 뉴욕타임스가 "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라고 선언하고, 워싱턴포스트가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어간다"는 문구를 내걸었을 때, 그들은 기사가 아니라 '믿음'을 팔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구독모델은 저널리즘을 상업화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저널리즘의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우리는 독자에게 진짜로 필요한 존재인가?" 이 질문을 매달 청구서처럼 들이미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면, 조직 전체가 같은 방향을 봐야 합니다. 구독모델은 한 팀의 실험으로 완성되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독자와 맺는 관계 전체를 바꾸는 일이니까요. 우리의 시도는 그 전제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몸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가치 있는 콘텐츠에는 독자가 지갑을 연다. 지갑을 여는 독자가 있으면 플랫폼과 광고주 눈치를 덜 봐도 된다. 이 선순환이 작동하려면, 먼저 조직이 그 선순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희귀하고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 그 TF에서 배웠습니다.
*stockcake.com에서 가져온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