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 사회적비용' 지불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위험사회'를 벗어나기 위하여
<편집자주> 2014년 세월호 사건 이 일어난 직후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개작한 글입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이태원, 오송... 정권을 가리지않고 잊을만하면 대형사고들이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다시금 돌아보면 위험은 우리의 일상 속에 좀 더 가까이 스며들어 있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5천 명을 초과하고, 놀이시설 안전사고가 연평균 100건을 넘어서며, 먹거리도 불안하고, 초미세먼지주의보도 수시로 발령된다. 도대체 위험하지 않은 것이 별로 없는 '위험공화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지경이다.
돌아보면 위험의 원인도 명확하고 처방도 간단하다. 더 이상 부실시공은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며, 수많은 인명을 담보로 단지 이윤 추구만을 위하여 낡은 배를 위험하게 개조하고 화물을 과적하는 행위 역시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 안전교육은 더 강화해야 하며, 미비된 안전관리 규정은 보완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사회 풍토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안전은 이제 선거에서도 단골 이슈가 되고 있다. 선거 유세기간 내내 모든 후보가 안전 공약을 내세워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가 끝나고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이 진행되면 우리는 이전보다 한결 '안전한 사회'에 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을 것인가?
그러나 '안전'에 관한 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과 같이 '위험한 사회'에서 불안하게 살게 된 것은 안전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전을 위한 비용' 지불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가 안전을 위한 비용 지불에 인색하게 되는 것은 '안전'이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공공재는 일부 구성원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그 혜택만을 누리는 것을 막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임승차의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공공재를 통한 집단적 효용극대화를 위해서는 공동의 비용부담을 위한 계몽과 공평한 비용 분담을 위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경제학원론 교과서에서는 국방과 불꽃놀이를 공공재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안전은 단지 국방을 보다 확장한 개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공공재이다.
독일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의 특징을 "정확한 계산과 예측이 불가능한 위험들이 도처에 널려 있으며, 모든 개인이 위험 앞에 평등한 위험사회"로 규정한다. 그것은 기업들과 전문가·테크노크라트 집단이 대중의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현대 과학·기술을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독점적으로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대중들이 개입할 여지를 최대한 넓히고, 최대한 견제함으로써 사회적 제어력을 높이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하는 '성찰적 근대화'를 제시한다.
'위험사회'에 대하여 대중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위험사회'를 벗어나기 위하여 대중이 공동으로 노력할 바를 연구하여'성찰적 근대화'를 리드하는 책임은 누구보다 경제학자들의 몫이라고 할 것이다. 경제(經濟)의 어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인데, 그 뜻은 제민(濟民)이 경세(經世)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이 제민(濟民)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고 경세(經世)의 허명만 좇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위험한 사회가 되었다는 '미필적 고의'의 혐의를 벗기가 어려워 보인다. 경제학자의 한 사람으로 책임을 아프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