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회사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회사의 공기는 더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오후, 옆 동료의 자리에 인터폰이 울려댔다. 인사과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몇 분 있다가 내 뒤에 앉아 있던 동료에게도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고 다시 돌아온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섣불리 무슨 일인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내 차례가 곧 올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은 채.
하지만 내 앞에 놓인 전화기에서는 끝내 벨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야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회사를 떠나라는 말과 함께 3개월 월급과 실업급여 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라니.
그들 속에 나는 해당되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도 곧 버려지겠구나.’
그날 이후 회사 안에서는 숨을 깊이 들이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심장이 갑자기 요동치며 뛰다가 숨이 먹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아팠다. 아니 심장이 아팠다.
눈치와 긴장이 뒤엉킨 공기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독하고 힘들었다.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만약 오늘 내 자리에 전화벨이 울린다면?’ 그 생각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12년 동안 애써왔던 모든 순간들이 의미가 없어졌다. 치열하게 경쟁해서 올라가려고 했던 일, 위염과 장염에 매일 시달리며 링겔까지 꽂고 현장으로 뛰어갔던 날들. 회사와 집밖에 몰랐던 내 삶.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모든 게 무너지고 있었다.
회사를 떠나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는 두려움도 너무 컸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버티며 살아왔을까.
내 시간과 영혼을 갈아 넣은 대가가 정말 이것뿐이었을까. 매달 통장에 꽂히는 급여가 전부였을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고서야 회사 밖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일 말고 내가 좋아하는 건 뭐였지?라는 단순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회사 밖에서도 나를 위한 시간을 살아보자는 아주 작은 결심도 함께.
체력이 있어야 공부도 하고 깊은 생각도 할 수 있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퇴근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연두와 초록빛을 뽐내는 나무들을 지날 때마다 온몸이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뛰고, 숨 쉬고,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일과 나를 분리하는 일이 조금씩 가능해졌다.
회사 밖 시간은 내가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었다. 반쯤 무너져 있던 마음을 붙들어 주고 흔들리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천천히 가라앉혀주는 시간이었다.
일이 내 삶의 중심으로 살았었다. 중요한 건 나를 지키려면 먼저 회사 밖 나와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것을.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이 인생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그곳을 떠날 것이고, 그 자리는 어떤 누구든 채워질 것이다. 회사 안이 아닌 밖에서 쌓아온 시간들이 평생 나만의 자산이 된다.
그래서 더욱 나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걷고, 달리고, 읽고, 생각하고, 내 감정에 귀 기울이는 시간들.
회사에서 감정에 흔들려도 이제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내 안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내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 낼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