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어둠이 깔린 새벽, 올림픽대로 위를 조용히 달렸다.
잠시 뒤 동이 트면서 태양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떠올랐다. 자연이 선물해주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지나가는 것처럼 컴컴했다.
그 순간 이런 상상을 했다.
이대로 교통사고가 나서 엠뷸런스에 실려 바로 앞에 보이는 아산병원에 입원하게 된다면,
‘지금 맡고 있는 일을 누군가가 대신할 테고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현실성 없는 미래를 기대하며, 초점을 잃어버린 눈은 떠오르는 태양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애쓰고 있는 거지?‘
사무실에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전날 밤 12시까지 야근을 했지만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책상에 가득 쌓여있었다. 노트북의 전원을 켜자 읽지 않은 수십통의 메일이 화면을 뒤덮었다.
오전에 서류 업무를 하고 공장에서 외근 후, 검사를 마치면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 쌓인 잔업을 처리하는 일의 반복.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차 안에서 삼각김밥을 입에 우겨 넣던 시간들. 수십통의 업체 전화를 받으면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 뻔했던 순간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업무들이 벌써 세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동료들의 정리 해고 후 회사 구조는 대대적으로 변화가 있었다. 나는 신생팀의 팀장으로 배정되었다. 팀원은 단 한명 뿐이었다. 상사는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떤 상황도 설명 하지 않았다.
며칠 일해보니 둘이 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았다. 상사에게 팀원 충원을 요청했지만 신설팀이라 매출도 얼마 안 나오니 두명이면 충분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당한 처우에 화가 치밀었지만 더 요구하는 건 의미 없겠다는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둘이서 업무를 시작해 나갔지만 해도 해도 끝날 기미가 안 보였고, 계속되는 야근은 우리를 점점 소진시키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 이라는 말 한마디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
스스로 초라해질때마다 성과와 야근,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채찍질하며 버텼다. 잘하는 사람이어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처럼 믿었다.
그래서 몸이 무너져도, 마음이 닳아도 “조금만 더,이번만 더” 라는 말로 그 자리를 버텼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몸보다 먼저 마음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잠에 들지 못했고, 소화불량으로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았고, 가끔씩 심장이 튀어나올 듯 요동치다 멈췄다 다시 뛰기를 반복하며 숨이 조여왔다.
일이 힘든게 아니었다. 나를 잃어버린 게 힘들었던 것이다.
한번은 상사가 전체 회의 시간에 나에게 던진 말한마디로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반박하려 했지만 목소리는 거칠고 심하게 떨리며 불안했다. 상사는 더 크게 소리치며 더 이상 말을 못하게했다.
그 짧은 순간 감정이 순식간에 요동치고 휘청거렸다.
‘아.. 내가 나를 너무 혹사시키고 있구나. 내 몸이 한계에 다다랐구나.’.
그때부터 였던가.
퇴근 이후와 주말에는 회사 메일을 안 보기 시작했다.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오늘 하루를 평가했다.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기록했고, 하루를 감사 일기로 시작했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지키는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일에 휘둘려 사는게 아니라, 내 인생을 책임지고 내가 선택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은 나를 조금씩 숨쉬게 해주었고, 짓누르고 있던 책임감도 조금은 내려놓게 해주었다.
그동안 나는 늘 불안하고 두려웠다. ‘이 회사에서 쫓겨나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감은 내 자신을 온전히 바라 보지 못한 채 어두운 늪으로 나를 계속 밀어 넣었다.
두려움은 가짜고, 나를 늪으로 밀어넣은 불안감도 가짜다. 내가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다.
그런거에 두려워하지말고 불안해하지도 말자. 일은 일일 뿐이고 일만 쫓다보면 나를 잃고 일만 남는다. 그렇게 되면 결국엔 둘다 잃게 되는 결과만 가져온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말자.
그러니깐 일에 나의 전부를 갈아넣지말자.
일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를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