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이 성사될 때까지 거래처 직원들을 주인님 모시듯 해야 하고, 업체가 원하는 조건과 물품을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파악해서 만들어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이 대개 그렇듯, 업체관계자의 마음에 쏙 드는 물품을 개발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어렵고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여러 번 거절해도 처음인 것처럼 웃으며 다가가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줘야 했다.
좋은 기회로 2년째 공들이고 있는 제품을 계약하겠다는 업체가 나타났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프로젝트로 대량 주문이 예상됐다. 상사분들과 주위 동료들이 하나둘 축하를 해주었다. 포기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칭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리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상사가 나를 뻔히 보더니 한마디 했다.
“쏘달리고, 너 영어 잘하나? 바이어랑 대화가 가능해? 너 못하잖아. “
순간 뇌가 얼어 버린 듯 바로 대답을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기가 옹알이하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노력하면 가능합니다. 영어 잘하는 팀원 한 명만 충원해 주시면 잘 이끌어보겠습니다.”
상사는 믿기 어려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리를 떠났다.
며칠이 지난 후 결국 그 프로젝트는 다른 팀으로 넘어갔다. 2년간 쌓아 올렸던 성과가 모래가 빠져나가듯 손가락 사이로 사라져 갔다. 상사에게 반박하지 못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억울한 감정이 몸 구석구석 맴돌았지만 내 잘못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대놓고 억울해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결과였고 내 책임이었다.
그날 오후 친구와 연락이 닿아 이 억울한 상황에 대해, 회사의 매정함에 대해 토로했더니 친구가 따끔하게 한 마디 했다.
“야, 뭐가 억울해. 내가 상사였어도 그랬겠다.
너는 회사에서 필요한 게 영어인데, 기본도 못하면서 매번 불만만 말하냐?
도대체 그 회사 다니면서 14년 동안 뭐 한 거야?”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영어가 기본 언어로 사용되는 무역 회사인데 영어를 못하면서 어떻게 일을 해 온 것인지 정말 한심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야근 후 술자리를 가졌고, 상사가 마음에 안 든다며 불만만 나불대던 입은 정작 필요한 언어는 공부하지 않았다. 업무에 사용되는 영어의 문장이 한정적임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문장마저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준비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나는 14년을 안주하며 보냈다.
회사에서 오래 버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에 필요한 능력을 미리 공부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는다. 미리 준비하지 않아 놓치게 될 많은 기회들을 생각하면 신입 때부터 업무에 필요한 공부는 해놔야 한다. 직급이 오를수록 업무도 많아지고 차근차근 능력을 쌓을 여유도 없다.
언제 어떻게 나에게 기회가 올지 모른다. 그 귀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단단히 지키는 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