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화면 하단의 시간을 확인하고 마지막 메일에 회신을 한 후 노트북을 닫았다. 약속도 있는 날이라 해야 할 일은 자연스레 내일로 미루고, 대충 서류를 한 곳에 모아 놓은 뒤 서둘러 일어났다. 그 순간 저 멀리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못 들은 척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발을 옮겼지만, 더 크고 선명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결국 멈춰 서서 시선을 돌렸다. 상사와 타 부서 부장의 눈이 나를 향한 채 회의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씨, 또 무슨 일이야.’ 무표정으로 터덜터덜 그곳으로 걸어갔다.
상사는 타 부서 부장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A업체 메일 내용 확인 했어? 이거 우리 팀에서 회신할 수 있잖아?”
“이 내용은 처음부터 저희 팀에서 진행한 것이 아니라서 타 부서에서 메일 회신이 필요해요. 저희 팀에서 확인이 어려워요.”
내 대답과 동시에, 아니 정확히는 내 말을 끊고 타 부서 부장이 흥분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참나, 그쪽 팀에서 할 수 있는 걸 왜 자꾸 번거롭게 만들어? 그냥 너네 팀에서 알아서 해.”
무례하고 날카로운 말투는 순간 화를 치밀게 했다. 몸은 굳어지고 심장 박동은 빨라지며 서로의 주장이 오고 갔다. 대화는 흐지부지 끝이 났지만 풀지 못한 분이 남아 약속장소로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도, 집에 와서도, 심지어 침대에 누워서까지 그 장면은 멈추지 않고 반복 재생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 무례한 사람에게 내 밤시간까지 내어주고 있는 거지?’
소중한 가족, 친구에게 혹은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써야 할 에너지를 이 쓸데없는 사람에게 낭비하고 있는 내가 바보 같이 느껴졌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쓸 다정함도 모자란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시간과 감정을 쏟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상대를 보지 않고 내 안을 먼저 들여다보기로 했다. ‘지금 내가 화가 났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한 뒤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 바깥공기를 맡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긴장되었던 몸을 풀기 위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기지개를 활짝 켜는 것만으로도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 작은 행동들이 소란스러웠던 머릿속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고, 상대의 말에도 이전만큼 흔들리지 않게 해 주었다.
신경 쓸수록 생각은 그 감정 안에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누군가의 무례함은 나를 해하려는 의도가 있기보단 생각 없이 튀어나온 말인 경우가 더 많다. 상대의 말을 내 마음으로 들이지 않으면 내 기분이 상할일도 없으며 그것이 나의 평온함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를 지키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소중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의 소중한 마음을 낭비하지 말자.
그것이 직장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품격 있는 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