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깎아 타인의 빈틈을 채워온 시간들

by 쏘달리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를 깎아내 타인의 빈틈을 채워 놓는 경우가 있다.

타 팀 부장의 억지스러운 요구에도 내 상사는 어찌 그리 고개를 잘 끄덕이든지. “아 그 방향이 맞겠네요.” 그가 내뱉은 말은 고스란히 나의 일감이 되어 책상에 쌓이기만 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그들의 입맛대로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반면에 공장 측과 협의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상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공장이 돌아가야 우리가 사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번에는 좀 넘어가주자.”라고 말했다. 나 역시 싸우기도 싫고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늘 조율하는 쪽을 택했다.


공장 측과 이야기할 때는 “저희는 늘 윈윈 할 수 있도록 공장도 반드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맞추려고 애쓰고 있어요.” 라며 유유하게 넘기듯 말했고 답답함은 속으로만 삼켰다. 공장 측의 과실로 작업 기일을 맞추지 못해 발생한 비용조차 교묘하게 우림 팀의 책임으로 전과되었다. 결국 일은 내가 생각했던 방향대로 흘러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공장 담당자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을 느꼈다. 그 선의는 배려가 아니라 기본값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부탁이었고 그다음은 요구가 되었고 나중에는 공장이 유리한 방향으로 해 달라는 게 너무도 당연한 전제가 되어 있었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 나를 무시하는 건가?’

하지만 이런 생각이 계속 깊어질수록 나만 더 힘들어졌다. 분노는 쌓이고 말하지 못한 말들은 머릿속에 윙윙 거리며 맴돌고 있었다. 생각으로 에너지를 쓰고 나니 정작 중요한 일에 힘을 쓰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 일까? 내가 사회생활을 못하나?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나는 질문을 다시 던져 보기로 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쉽게 내어준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나는 무리한 요구에 큰 소리를 낸 적도 없었고, 상대가 버럭 하며 화를 내던 순간에도 상황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잘 타이르며 조율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이 입에 붙은 사람처럼.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한 발 양보하며 물러선 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내어준 선은 그들의 자리처럼 굳어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착해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니고 이 사람은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어느 날 또다시 공장 측에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건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예전 같았으면 “아…네, 한 번 조율해 볼게요.”라고 답했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조건이면 저희 손해가 너무 큽니다. 내부적으로 검토해 보고 말씀드릴게요.”라고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가슴이 뛰고 분노가 솟구치는 한편, 이러다 관계가 틀어지는 건 아닌가 뒤늦게 걱정이 되면서 뒷목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이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통의 메일로 상황을 간단히 보고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지켜야 했던 건 관계가 아니라 내 선이었다는 걸.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사실은 계속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던 거였다. 싸우기 싫어서, 불편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나를 언제나 마지막 순위로 방치하고 있었다.


이후 상대 입장부터 생각하는 대신 내 조건을 먼저 점검하기로 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정인지 우리 팀에 과부하를 주지는 않는지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그걸 확인한 다음에 대답했다.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 예전처럼 상대방에게 좋은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를 또 마지막 순위로 미뤄놓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연습 중이다. 유순한 사람이 아니라 일적인 경계를 명확한 사람이 되는 연습을.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눈치 보며 나를 희생하는 대신 나를 지키면서도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