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나오지도 않는 음식물 찌꺼기를 토해내듯 헛구역질을 했다. 핏기 없는 얼굴과 부시시해진 머리칼을 거울에 비춰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왜 이러지, 어제 먹은 게 잘 못 됐나.’ 아침에 먹은 고구마가 잘 못 된 건지, 장염인지 알 수 없었다. 몸을 추스르고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비어 있는 칸에 재빨리 달려가 변기 뚜껑을 열고 방금 마신 물 한 모금과 정체 모를 노란 위액까지 쏟아내고서야 구역질이 멈췄다.
‘12시에 업체와 점심 약속이 있는데 큰일이네.’ 입을 헹구고 터벅터벅 자리로 돌아갔다.
“김 과장, 업체 약속 잊지 않았지? 준비해. 지금 나가야 해.”
상사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팀원 5명과 함께하는 송년회이자 프로젝트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업체와 약속을 잡은 것도 나였고, 팀장으로서 빠질 수 없는 자리라는 강박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약속장소인 횟집으로 이동했다.
업체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가 시작됐지만 내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고급 횟집에서 풀 코스로 서빙되는 산해진미가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티는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천천히 젓가락을 들고 먹는 척을 했다. 접시 위를 배회하다가 의미 없이 음식을 내 접시에 옮겨 담았다. 국물 한 모금 먹는데 10초, 계란찜 한 숟가락 뜬 채 20초.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이런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평소보다 더 많은 말을 쏟아냈다.
“근데, 김 과장님은 왜 안 드세요? 음식이 안 맞으시나?”
“아.. 아니요. 대화하다 보니 속도가 늦네요. 천천히 먹고 있습니다.”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쥔 채 방긋 웃었다. 한 입도 먹지 않은 상태여서 튀김하나를 가져와 우걱우걱 먹는 걸 보여줬다. 입안에 들어온 튀김이 모래알처럼 느껴졌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양 턱을 움직였다. 그리고 화장실 가서 또다시 쏟아냈다. 지옥 같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려고 노력했다.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한 짓이다. 그 자리에 내가 없다고 회사가 무너지지 않는데, 마치 내 존재가 사라질 것처럼 굴었다. 세상에서 내 몸이 가장 귀하고 소중한데 회사에서의 책임을 나보다 더 우선순위에 둔 거다. 이런 욕심은 몸의 신호를 외면하게 했고, 책음을 앞세워 고개를 숙이게했다. 노란 위액을 쏟아내며 지키려 했던 것이 고작 나의 체면이었음을 깨닫는 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약 그날, 우리 팀원이 얼굴이 하해진 채 내게 와서 “팀장님, 도저히 속이 안 좋아서 오늘 점심 업체 미팅은 못 갈 것 같아요. 병원 좀 다녀올게요.”라고 했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래, 얼른 다녀와. 우리가 알아서 할게.”라고 쿨하게 말했을까? 아니면 입으로는 가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퍼도 좀 참고 할 수 없나.' 라며 서운함을 품었을까.
팀원 한 명이 자주 병원을 갔다. ‘피부병이 있어서, 눈이 따가워서, 비염이 있어서..’ 많은 이유를 대고 업무시간에 자리를 비웠다. ‘점심시간 놔두고 왜 바쁜 업무시간에 병원을 가지.’라고 속으로 팀원을 질책한 적이 있었다. 모니터 옆에 놓인 약 봉투를 보면서 나는 위로 대신 팀원이 완료하지 않은 일들을 지적했다.
내가 아플 때는 투혼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대견해했으면서 팀원이 아플 때는 자기 관리 부족이나 책임감 결여라는 잣대를 들이밀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24년간 회사에서 버티며 단단한 내면을 길렀지만, 어쩌면 단단함은 나의 체면을 지키는 수단이 되어 타인의 아픔마저 내게 미칠 손해로 계산하는 냉정한 사람으로 나를 변질시킨 것은 아닐까.
이제는 팀원이 자리를 비웠을 때, 그가 언제 오는지 시간을 계산하며 시계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안부를 더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동료의 빈자리를 초조함이 아닌 걱정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나는 조금 더 나은 상사가, 그리고 조금 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