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는 연습이 부족한 채, 어른이 되었던 나에게
자취를 한다는 건 수많은 선택을 하고
또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실수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실수를 매우 두려워한다.
어릴 때 해야 할 실수하는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나는 몸만 큰, 어른이 되었다.
나는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칼, 가위 하나를 사도 리뷰를 다 읽어보고
비교 유튜브를 여러 개 보고 오랫동안 고심해서 구입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몇 달 동안 집을 채워갔다.
집들이를 오는 친구들마다 이 집엔 '필요한 건 다 있다'며
집을 구경하면서 엄청 많은 물건들을 물어보고
링크를 보내달라며 본인들도 내가 산 물건들을 주문하고 갔다.
내가 꼼꼼히 따져보고 산 거니까 친구들한테 물건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
사용하면서 느꼈던 장, 단점들도 이야기해 준다.
내 설명을 들은 친구들은 홀린 듯이 물건을 구매했고
다들 나보고 쇼호스트를 했으면 잘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정말 나는 물건을 사고 싶게 만드는 '찐 인플루언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실수한 것들이 있다.
불멍을 좋아하는 내가 산, 알코올 불멍램프세트.
엄청난 그을음과 냄새, 불이날것 같아 한번 켜보고 무서워서 다시는 켜지 못했다.
하얗고 예쁜 샤워기호수, 머리 염색으로 물이 빠지며
갈색으로 물들어 다시 스테인리스로 바꿨다.
플라스틱, 규조토, 스테인리스...
칫솔꽂이도 벌써 3번이나 바꿨다.
새로 산 냄비는 음식을 졸이다가 태워서 까맣게 탔고
까맣게 탄 걸 지우려다가 코팅이 다 벗겨졌다.
왜 엄마가 쇠젓가락으로 냄비를 휘젓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는지
그때 깨달았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말하셨다.
" 넘어져도 괜찮아. 손에 뭔가 쥐고 일어서면 되는 거야."
하지만 어머니는 정작 좋은 길로 안내해주려고 하시느라
내가 실수할 수 있는 법은 가르쳐주지는 않으셨다.
물론, 나의 실수에도 너그럽지 않으셨다.
독립하고 비로소
나는 내 실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몇 번의 실수하고 나서야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도전이라는 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수용하다'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비로소 대학원을 졸업하고 8년 동안 미뤄두고 있던 논문을 다시 시작했다.
논문은 캐캐묵은 나의 낡은 짐덩이였다.
나의 가슴 한 구석에서 계속 어디다 놓여야 할지 모르는 짐덩이처럼 배회했다.
8년 전, 논문을 쓰려고 하다 대차게 까이고 포기한 이후로
여러 이유를 핑계 삼아 좀처럼 다시 도전하게 되지 않았다.
가슴 안에 스멀스멀 용기가 피어났다.
논문을 시작한다고 가족들에게 말했을 때,
폭삭 속았수다를 감명 깊게 본 아빠는 말했다.
" 쏘담아, 언제든지 포기하고 싶으면 포기해도 돼. "
언제든 포기하라는 말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응원과 지지가 되었다.
마침, 연구해보고 싶었던 주제도 있었고
좋은 관리자도 만났고 무엇보다도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에
다시 논문을 시작했다.
논문은 시작단계부터 실수투성이였다.
내가 한 번도 해본 적 없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프로포잘를 준비 하면서 수도 없이 실수했고
계획 단계에서부터 나의 논문은
7번 IRB(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에 까이고 8번째 통과했다.
7번 쓰러져도 8번 다시 일어나는 왕눈처럼
포기하고 싶던 순간에도 다시 도전했다.
설문지도 마찬가지였다. 설문지 동의도 엄청 헤맸다.
교수님들 외래에 전화하고 메일도 해 어렵게 어렵게 연락이 닿아
겨우 허락을 맡았다.
설문지를 돌리는 과정에도 어려움이 많았고
통계를 돌리는 과정에도 통계를 실수해서
한 번도 어렵다는 통계를, 4번이나 다시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의 논문은 아직도 -ing 중이다.
아직 몇 번의 통계를 더 돌려야 할지, 몇 번의 실수를 더 발견할지, 몇 번의 수정을 더 거쳐야 할지 아득하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자존감의 근원은 나에게 너그러운 것이라고 한다.
오늘도 나는 실수한 나에게 말해준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는 아직도 실수하는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