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

by 쏘담쏘담

요즘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어릴 때 꿈을 물으면 작가, 의사, 대통령 같은 '명사'였는데

요즘 나의 꿈은 나를 수식하는 '형용사'의 형태이다.


내가 하는 3개의 연구회 중 내가 사는 지역에서 하는 디지털 연구회가 있다.

내가 디지털연구회에 참석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나보다 열 살쯤 많은 여선생님 두 분 때문이다.

연구회에 가서 그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눈빛이 항상 반짝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 주변에서 눈빛이 반짝이는 선배교사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연구회에서 만나는

그녀들은 항상 새로운 걸 배우고 항상 모르는 걸 질문한다.
항상 눈빛이 반짝인다.

사실 디지털연구회가 너무 어려워서
내가 잘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코딩을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과수업들이어서 나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근데 눈을 반짝이는 그녀들은
나에게 매번 새로운 자극이 된다.

나도 저렇게 눈이 반짝이고 싶다.
항상 새로운 걸 배우고
항상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느끼게 한다.


연구회에서 이제 막 2년 차가 된 띠동갑 선생님이 이야기하셨다.

" 선생님, 저는 존경받는 선배교사나

학생들한테 사랑받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내가 말했다.

" 선생님, 그럼 선생님은 선생님을 존경해 주는 후배교사나 선생님을 사랑해 주는 학생이 있어야만 하잖아요.

타인이 기준이 되면 선생님은 그들에게 휘둘리게 돼요. 내가 기준이 되어야 행복할 수 있어요."


그 선생님이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도 계속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제가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 저는 요즘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제가 보기에 제가 멋진 사람이 되려고요.

언젠가는 선생님도 제말을 이해할 날이 올 거예요. "


그 선생님은 여전히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20대 중반의 나이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평가 기준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넘겨주고

그들이 내 기분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허락했다.


사실 수많은 경험과 고통 끝에 나도

잔뼈가 굵어진 나무가 되었는데

어떻게 사회초년시절부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본인이 깨달아야지 옆에서 해주는 잔소리들은 모두 귀찮을 뿐이다.


한 때, 나도 학생들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첫 발령지는 엄청 시골 학교였는데 학교에 30대가 거의 나뿐이었다.

나는 만 29세에 그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으니 어리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 학생들 입장에서 나는 정말 젊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과 조를 이루어하는 활동시간에도

학생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도 나를 선택했다. 그저 젊다는 이유만으로.


나이 든 선생님과 같은 걸로 혼내도 내 말은 좀 더 잘 수용했다.

한 학생에게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저 선생님이 하는 말은 쓴 위스키 같은데 선생님이 하는 말은 맥주 같다"라고 했다.

술은 같은 쓴 술인데도 느낌이 다른 거였다,

그러면서 두려워지기도 했다.

젊음은 유한하고 나도 언젠가 나이를 먹을 텐데.

학생들이 나를 좋아해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나의 말도 위스키 같아질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고민을 친한 상담선생님께 말했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 선생님, 학생들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해요.

학생들이 선생님이 싫어서 아픈데도 보건실에 오지 못하게만 안 하면 돼요.

우리는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돼요."


나에게 그 말은 큰 울림이 되었다.

내 인생의 기준을 남으로 세우는 순간.

나는 그들에게 휘둘리게 된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교사가 되려는 순간.

나는 학생들에게 단호해야 할 순간에 단호해지지 못할 것이다.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교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준을 나로 잡아야 한다.


요새 점점 꿈이 많아진다.

어릴 때보다 되고 싶은 꿈이 더 많아진다.


나는 내가 나이가 들어도 항상 배우고 싶은 게 있고

항상 눈이 반짝이고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않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며 웃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감정을 더 잘 다스려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내 의견을 차분하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를 질투했다면 혹은 무언가 다른 잘못을 했다면 여전히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때도 여전히 내가 나에게 떳떳하고

내가 나에게 친절하고 나를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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