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는 그때 그러고 싶었다
나는 요새 나에게 충분히 너그러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 자존감의 정의를 나의 가치를 어떻게 보는 가로 정의한 적이 있었다.
그 정의에 의하면 나는 자기효능감도 높고 자존감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최근 자존감의 정의를 보면 실패한 나도, 실수한 나도 가치 있게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 정의에 의하면 나는 자존감이 매우 낮은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쏘담아, 좋은 사람이 완벽할 필요는 없어."
대학교 때의 친구도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 너는 다른 사람한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너에게는 너무 엄격해."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아버지도 말씀하셨다.
" 쏘담아, 아빠에게는 좀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도 돼. "
왜 이렇게 나는 완벽하려고 하고 나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걸까.
다른 사람에게 하는 가장 다정한 말을 나에게도 들려줘야 한다.
가끔 나는 예전에 했던 잘못된 생각, 실수했던 말, 행동들이 떠올라 잠이 안 올 때도 있다.
나 자신이 너무 수치스럽고 상황을 바꾸고 싶은 순간도 있다.
얼마 전에 무언가 양자택일 선택을 해야 할 때도 내가 한 선택이 맞는지 계속 고민했다.
방학 동안의 수업스케줄과 갑자기 임용고사상 스케줄이 겹치면서
내 몸이 두 개가 아니므로 나는 둘 중 하나의 스케줄을 바꿔야 했다.
선택을 하고 나서도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계속 후회했다. 이게 맞을까?
죄책감도 들었다. 결국 잘 해결되었지만 나는 계속 고통스러워했다.
근데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에게는 그런 선택을 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때의 내 마음은 틀린 게 아니었다.
얼마 전에 친구랑 3시간 전화통화를 하면서
다른 친구에게 서로 서운했던 감정들을 털어놓았다.
그 통화가 끝나고 며칠 뒤 친구가 카톡이 와서
자기가 너무 그때 맞장구를 치다 보니까 너무 심하게 다른 친구를 욕한 거 같아서 후회된다고 했다.
친구가 서운한 감정을 몇 시간 동안 쏟아놓고 나에게 한 말이라서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말했다. 나는 그때의 감정을, 했던 말들을 후회하지 않아.
나는 그때 너의 말에 동조하기 위해 한 말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생각해 오던걸 말한 것뿐이야.
생각해 보면 몇 년 전 나도 누군가를 욕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욕하면 안 된다는 나의 엄격한 잣대에 죄책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내 감정을 부정하고
내가 욕한 사람을 나 혼자 변호해주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의 감정은 틀린 게 아니다.
과하거나 상황에 안 맞는 서운한 감정 토로는 물론 줄여야겠지만.
그때의 나의 마음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므로.
가끔 어린애 같은 표현을 하는 나도 있고
심통을 부리는 나도 있고
왜 저런 말을 할까 한심한 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마음은 틀린 게 아니다.
무수히 많은 이유와 상황에 의해
그때의 나는 그런 행동을,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나를 변호해줘야 한다.
그리고 근거를 대지 못하고 이유를 대지 못하면 좀 어떠랴.
그냥 나는 그때 그러고 싶었다!!
나만은 착실하게 내편을 들어줘야 한다.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여야 하며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립해야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세상에 표현할 권리가 있다.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하면서까지
나의 생각을 세상에 표현할 자유를 주장해서는 안 되겠지만
나의 자유로운 생각을 충분히 존중하고
내 순간의 감정과 마음을 충분히 존중해 주기로 했다.
사실 내가 '행복'하다고 말을 한다고 해도. 행복은 고정값이 아니다.
불쑥불쑥 고통, 부담, 버거움, 힘듦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때그때 찾아오는 나의 감정들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때 그 상황에 나는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나를 꼭 안아 준다. 토닥토닥 보듬아 준다.
오늘 세일하는 물건을 사서 베란다에 쟁여놓으러 갔더니
똑같은 물건을 이미 사놓아서 웃음이 빵 터졌다.
그리고 나에게 말해줬다.
그때 사고 싶었고 지금도 사고 싶었어. 내 마음은 틀린 게 아니야.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