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은 세상을 더 좋게 바꾼다.
나는 오지랖이 많다.
어려서부터.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그냥 지나칠 줄을 모른다.
내 생각에 도움이 필요한 거 같으면
그 사람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꼭 과도한 친절이라도
내보여줘야 속이 편하다.
그냥 넘어가도 될걸 누군가 잘못하고 있는 거 같으면 말이라도 얹는다.
병원에서도 퇴근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퇴근하지 못하고 아랫년차라도 오물통을 비워주고 가벼운 일이라도 도와줘야 마음이 편하고
길을 헷갈려하는 사람이 보이면 내가 잘 아는 길이면 이 길이 맞다고 이야기해 줘야 비로소 내 길을 갈 수 있고
누가 진짜 맛없어 보이는 음식점을 가려고 하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입맛에는 거기 별로라고 말해줘야 속 시원하다.
어느 모임에서든 말 안 하고 있는 사람이 있거나 누군가 불편해 보이면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가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괜히 오지랖 부렸나 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많다.
저 사람은 저런 말이나 행동을 바라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고 돌아보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래서 오지랖이 전혀 없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했다.
그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말했는데 친구가 말했다.
"근데 쏘담아, 오지랖이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거야. "
정말 친구의 말대로
나의 오지랖이 의도치도 않게 따뜻함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얼마 전 한 학기만 근무하시고 학교를 떠나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떠나시면서 그 선생님이 학교에 계시는 동안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자기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점심시간에 일부러 자기 옆에 앉아줬던 순간이라고 했다.
그때의 순간과 그때의 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자기에게 너무 힘이 되고 따뜻했던 순간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분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같이 밥 먹고 같이 근무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뭔가 최근 인간관계에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내가 남에게 힘이 되고 잊지 못할 순간을 남겨주기도 한다는 게
나에게도 큰 위안과 위로가 되었다.
인생이라는 게 참 플러스마이너스인 게 누군가에게
생각지도 못하게 상처받기도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위로받기도 한다.
그 선생님이 써주고 간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따스한 벚꽃을 닮은 쏘담샘, 선생님 마음도 언제나 달달하시길 바라요. "
나의 오지랖이 세상을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바꾸지는 못해도
그 사람의 하루, 한 순간을 더 좋게 바꾸었으면 그걸로 나는 만족한다.
나를 만나는 누군가가 위로받고 누군가가 길을 헤매지 않고 한 순간이라도 따뜻함을 느꼈다면
오늘 나의 오지랖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