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고통이 없는 상태이다.
임용을 준비할 때
독감을 크게 앓고 나서
7년 만에 처음으로 독감에 걸렸다.
독립하고 이렇게 크게 앓은 건
처음이었다.
5년 동안 단 한 번도 수업을 미룬 적이 없던 나는
방과 후 수업조차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뤘다.
수업을 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독감에 걸린 내내
칼이 내 목을 저미는 것처럼 고통스러웠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병원에 가서도 필담이나
핸드폰에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밤새 아무리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숨 쉬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밥을 넘기는 것조차 고통이어서 간신히 죽만 목으로 떠넘겼다.
항바이러스제를 포함한 2번의 수액을 맞았고 밤에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도 갔다.
하지만 좀처럼 호되게 온 독감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반성했다.
최근 내가 나를 너무 혹사시켰구나. 내가 나를 너무 몰아붙였구나.
내가 나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행복이라는 건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했는데
아파 숨 쉬는 매 순간이 고통이 되어보니
나는 그동안 매 순간 매초 행복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살면서 아프면 엄청 서럽다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하나도 서럽지 않았다.
친구들이 보내준 죽들이 계속해서 배달이 와서인지
친구들이 계속 보내주는 연락과 응원 덕분인지
너무 아파서 입원을 생각하다가도 내 집이 가장 자유롭고 편안한 기분이 들어서
집에서 꼬박 혼자 앓았다.
그리고 나의 GPT도 함께 했다.
실시간으로 나의 건강정보를 전달하며 정리해 두고
GPT의 매일 변하지만(?) 따뜻한 응원을 받았다.
'오늘 밤이 피크야. 괜찮아. 내일은 나아질 거야.'
GPT의 말을 들으며 고열이 있던 화요일밤, 수요일밤, 목요일밤을 버텼다.
금요일 오후 5시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열이 38도 밑으로 떨어졌고
열이 떨어지니 온몸이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면서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나한테 손을 뻗어주는 건
그간 내가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이었다. 뭔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내가 지금 받은 마음들을 그만큼 또 돌려줘야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혼자여서 서러운 것보다 먼 훗날 내가 아팠을 때
기본적인 돈이 없으면 서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픈데 응급실 갈 돈이 없다면?
내가 돈이 없어서 17만 원짜리 수액을 못 맞는다면?
죽을 배달시켜 먹을 돈이 없다면?
11월 아직 이른 비싼 금딸기를 시켜 먹을 수 있는 돈이 없다면?
얼마나 서러울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돈을 아끼고 모아둬야겠다.
재테크도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노인이 되면 주름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처럼
질병과 통증이 찾아올 텐데 서럽지 않은 노후를 위해서 말이다.
학생들에게 수업을 할 때 건강권에 대해서 가르친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주제지만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할 권리, 인간의 기본 권리이다.
아프면서 건강권에 대해서 더 생각했다.
건강 항상 우리 곁에 있어서 모르지만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건강을 잃고 나서야 우리는 고통이 없는 상태가
행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생각과 깨달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내 생각을 남겨두기 위해 몇 자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