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보라. 경험하라.

by 쏘담쏘담

오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의 전시에 다녀왔다.


전시회를 다녀오면서

같이 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관람객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한 미술작품을 보고도

사람마다 참 이렇게도 느낌이 다르구나

또 한 번 느꼈다.


수많은 미술작품 중에

이유 없이 끌리는 작품이 있고

때로는 가슴이 벅찬 작품이 있고

마음이 괜스레 따뜻해지는 작품도 있었다.


그러면서 경험해보지 않으면 취향도 없구나 느꼈다.


미술관에 가든 어디를 가든

새로운 경험을 할수록

나도 모르던 나의 취향이 알게 되는 것 같다.


이제까지 내 직접 본 작품 중

1위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다.


프라도 미술관 때문에 다시 스페인을 가고 싶을 정도로

멋있는 작품이 가득한 곳이다.


프라도미술관에 가자마자

시녀들의 큰 크기에 압도되고

시녀들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2차원적 평면이 아니라

3차원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등장인물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거는 느낌.

수많은 서사들이 숨어있는 느낌.

사람마다의 해석은 다르지만 강아지부터 거울 속의 부부, 문밖에 사람까지

한 편의 웹툰 같은 역동적인 그림이었다.


또 프라도 미술관에서 본 고야의 1808년 5월 3일도 잊을 수 없다.



중학교 때 미술책에서 보던 그림을 내가 실제로 보다니!

이 그림도 그림 안에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로 멋있었던 그림은 클림트의 키스였다.


오스트리아 빈도 정말 다시 가고 싶은 도시 중에 하나이다.

진짜 스케줄을 빡빡하게 넣어

아침 개장부터 벨베데레 궁전을 갔었는데 피곤했어도 정말 후회 없었다.



큰 크기와 질감. 황금빛의 키스는 번쩍임 속에서

전통적인 남성적임과 여성적임의 느낌을 잘 묘사한 그림이었다.


키스 말고도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클림트가 그린 여인의 초상화도 좋았고



유명한 나폴레옹 그림도 좋았다.

승리와 말의 역동적임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이번에 국중박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도

제일 좋았던 작품은

'키스 반동겐'의 '경마장에서'였다.




끝나고 나와서 굿즈 파는 곳에 이 그림이 없는 걸로 봐서는

유명한 그림은 아니었던 듯싶다.



나는 서사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나 보다.

경마를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이 재미있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건다.

흰 개와 검은 개, 멋쟁이 커플, 경찰관, 연인들. 모두 각자의 서사가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티스를 좋아하고 야수파를 좋아하던 나는

강렬한 색채가 대비되는 그림을 좋아하나 보다.


키스 반 동겐의 경마장에 서라는

그림 앞에서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역시도 키스 반동겐의 그림이다.

키스반동겐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20세기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연인이었다던 수잔 발라동의 누워 있는 여성 그림도 좋았다.

마치 나를 바라보는듯한 그림 속 여인은 본인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에두아르 뷔야르가 그린 와로키와 함께 있는 자화상도 좋았다.

뒤에 있는 사람이 친구 왈로키라고 하지만 뭔가 또 다른 자신의 모습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명한 르누아르가 그린 피아노 치는 두 소녀도 좋았지만

나에게 큰 감명을 주지는 않았다.



점묘법으로 인상주의를 표현했던 앙리 에드몽 크로스의 해변의 소나무.

그리고 사진은 안 찍었지만 점묘법으로 그린 조르주 쇠라의 그림도 좋았다.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졌지만 멀리서 보면 또 다른 느낌이다.



라이문도 데 마드라소 이 가레타의 가면무도회 참가자들 역시

이야기가 숨어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가면 속 저 여인의 눈동자까지도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어두운 듯 보이지만 카미유 피사로의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르 대로도 좋았다.

앙상한 겨울이지만 도로 위에 바쁘게 오가는 마차들과 사람들이 역동적이고 활력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그림들을 좋아하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큰 그림일수록 감동이 더 다가오는 느낌이었고

강렬한 색채가 대비가 되는 그림을 좋아하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그림을 좋아하고

역동적이고 활력 있어 보이는 그림을 좋아한다.


사진으로 좋은 그림들을 많이 찍어왔지만

실제로 볼 때의 감동을 재연하기에는 아직까지의 사진 기술은 역부족이다.

실물로 이 그림들을 봐야 한다!!


뇌가 힘들면 미술관에 가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 맞나 보다.

1월 내내 수업하고 정신없다가

이제서야 힐링을 한 기분이다.


아름다운 그림만 봤을 뿐인데

감정이 정화되고

마음이 풍요롭고

생각이 힐링된다.



학생들이

" 선생님은 어떻게 보건교사가 되기로 하셨어요? "

라고 물어보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한다.

" 선생님은 엄청 오래 고민했어. 선생님이 좋아하는 게 뭘까 하고.

그래서 선생님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 거야. "



나의 대답을 듣고 나면

도무지 내가 좋아하는 걸 모르겠다는 학생들이 엄청 많다.

가끔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조차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모르겠다고 말하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내가 전시회에 가지 않으면

내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듯이

내가 대학생 때 후배들을 가르치는 강의를 방학동안 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떤 순간 가장 행복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나의 취향도 알 수 없다.


나는 작년 독립을 하고 나서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더 많은 나의 취향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취향을 모아놓은 인스타 하이라이트가 300개가 넘어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초록색, 요리, 꽃, 가족, 독서, 노을, 수업, 친구들,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 배우는 것, 산책 등등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무엇이든 해보라.

경험을 통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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