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목적, 그것을 찾는 긴 여정
아버지가 책을 읽으시고 너무 좋은 책이 있다며 동생과 우리 집으로 한 권씩 보내주셨다.
책의 제목은 '세상 끝의 카페' 소설 같지만 소설이 아닌 책이다.
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도 이 책의 저자처럼 당신만의 존재의 목적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그것을 찾으면 비로소 당신이 원하는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읽은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이 책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을 발견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예쁜 카페 문을 열 듯 가볍게 이 책을 펼쳐보자.
내 인생에서 파도는
바로 내 관심을 끌고 시간과 에너지를 가져가려 하는 모든 사람, 일 그리고 사물이라는 걸 알았어요.
내 인생의 진정한 목적과는 무관한 것들이요.
그리고 밀려가는 파도는 바로 내 존재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을 도와줄 모든 사람, 일, 사물이라는 걸 깨달았죠.
지금 밀려오는 파도와 씨름하는 건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라는 사실을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를 쓰는 그 모든 광고물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것들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다 보면 금세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또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만약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아내고,
그 존재 이유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산다면 돈이란 것이 지금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지요.
내가 나에게 최근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내 생각과 맞지 않는 누군가에 말에 예의 있게 반박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했을 때
내 가치관과 맞지 않은 일을 거절했을 때 뿌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려면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인생이라는 건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연속선상의 과정이겠지만
지금 시점에 멈춰 서서 나의 삶을 들여다볼 때
현재 나의 삶의 목적은
1. 아파서 보건실을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처치를 하는 것
2. 보건에 대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학생 또는 교직원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것
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을 찾아보자면
불의를 봤을 때 눈 감지 않는 것.
웹툰을 보다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댓글이 하나 있었다.
학교 폭력에 대한 댓글이었다.
" 선생님한테 말하지 마세요.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
그 댓글을 보고 정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러고 나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첫 학교에 첫 정규 보건교사로 발령이 난 목적을 깨달았다.
나에게 이 일을 처리하라고 여기로 보내셨구나.
나는 종교는 없지만 절대자는 믿는다.
나를 우리 집에서 편도 40km 떨어진 시골의 작은 학교
첫 정규 교사로 발령을 내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체중이 5kg나 감소했지만
나는 그래도 학생의 웃음을 지켜냈다.
그 학생과 그 사건을 아는 친구들은 살면서 적어도
"선생님한테 말하지 마세요. 해결되는 거 하나도 없어요."
라는 무기력감은 느끼며 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학생 옆에 있어주기로 약속했고
결국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왕복 80km의 학교를 다녔다.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찾은 사람들한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어요.
그들은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존재 이유를 충족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죠.
그리고 존재 이유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행운이 따른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존재 목적을 알고 있는 사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대부분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예상치 않았던 우연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생기죠.
중요한 건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 뿐이라는 사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답을 찾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은 거고요.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기 가장 좋은 때는
명상을 하거나 자연 속에 혼자 있을 때죠.
그런 방법을 통해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기 생각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다정한 것'이다.
나는 나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오지랖이 너무 넓어서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에게 무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정을 노력한다.
누군가 나를 생각했을 때 내가 다정함을 닮아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나에게 다정하려고 노력한다.
학교에서 다른 이를 배려한다고 하는 이보다
'저는 제가 제일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러니 하게도 가장 배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공유하자
원래 자기 자신을 제일 아끼는 사람들이 남도 아끼고 존중하는 거야. 라고 말했다.
이 말에 울림이 있었다.
가끔 나는 남에게 다정하느라 나에게 덜 다정한 순간이 있다.
나에게도 좀 다정해지자.
나는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의 가치관과 존재는 명확해진다.
쓸데없는 파도들을 아무렇지 않게 비켜나갈 수 있게 된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승진이라면 나는 내 가치관과 맞지 않지만
나의 목적과 맞는 수많은 것들을 안고 가야 할 것이고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돈벌이라면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유가 승진도 아니고 마냥 돈 버는 것도 아니라면
나의 존재의 목적에 맞게 나의 행동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죽음이 두렵습니까?
나는 지금 현재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고 싶다와는 좀 다른 말이다.
이 말을 친한 선생님이 했을 때는 왜 죽음이 두렵지 않아야 할까? 싶었는데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래서 언제든 미련이 남지 않은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올해는 내가 지금 죽어도 두렵지 않을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에게 '충만함'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여러 번 브런치에서 썼지만 '혼자 있음'이다.
나는 내가 혼자 있으면서 충전한 에너지를
사람들과 있을 때 나눈다.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내가 살 집이 있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을 돈이 있고
사계절에 맞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나의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커피 한잔과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음악을 들으며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현재 나의 삶은 충분히 충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나의 삶은 여기서 마침표가 아니다.
현재의 존재의 목적은 이러하지만
인생이라는 건 나의 존재의 목적을 찾기 위해 떠나는 긴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존재의 목적에 대해 고민하고
오늘 죽어도 후회도, 미련도 없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내가 소모되고 비어지는 순간에 충만해지려고 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배울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내 존재 이유의 가능성을 담는 우주가 더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우주는 내가 처음 여행길에 올랐을 때보다
확연히 더 커져있었다.
지금 나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 이유를 충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는 저 문 넘어 다른 쪽에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