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만족에서 온다.
얼마전에 친구들과 모여서
우리집에서 파자마파티를 하며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정의한 다른 행복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했다.
내가 독립하면서 느낀 행복의 정의는 '만족'이었다.
나의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만족에서 온다.
많은 걸 소유해서 행복한게 아니라 내가 가진것들에 만족해서 행복하다.
나보다 훨씬 많은 걸 가진 친구들이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느꼈다.
행복은 한강뷰, 건물, 외제차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만족에서 오는 구나.
그걸 깨닫고 나니, 나의 컴플렉스가 사라졌다.
나는 사실 학벌컴플렉스가 있었다.
나의 학벌은 객관적으로 나쁘지않지만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 줄곧 반에서 1~2등을 해오던 나는
나의 대학에 만족할 수 없었고 부끄러웠다.
나의 대학을 보고 이모는 말했다.
"너 공부잘한다고 니네 엄마가 그렇게 자랑하더니 그 대학밖에 못갔니?"
그말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물론 여담이지만 사촌동생들은 내 대학보다 훨씬 더 못미치는 대학을 입학했다.
그렇다고 대학시절이 암울했나?
그것도 아니었다. 대학시절도 즐거웠다.
좋은친구들도 얻었고 동아리에서 선후배들과도 즐겁게 잘지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영화같은 연애도 했다.
우연히 선택한 과도 적성에 맞아
나는 4년 내내 과탑을 유지했다.
자대병원이 있는 탓에 취직도 쉽게 했고 내가 원하는 병동으로 발령도 났다.
하지만 나는 내마음속에 항상 학벌컴플렉스가 남아있었다.
사람들에게 내 대학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내 대학은, '꾸겨진 오만원짜리 지폐'같았다.
교사가 되고나서도 그랬다.
누가 내 대학을 물어봐도 말을 돌리거나
근무했던 병원을 물어봐도 그냥 '대학병원'으로 애매하게 말했다.
연구회에서 어떤 선생님이 내 강사카드를 보고
"선생님! ㅇㅇ대학교 나왔더라? " 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했을 때
같이 있던 선생님은 그 선생님이 칭찬으로 한 말일꺼라고 했지만 나는 칭찬같지 않았다.
매우 수치스러웠고 기분이 나빴다.
그러다가 자취를 하게 되고
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나를 괴롭히던 그 고질병이 없어졌다.
내가 서울대에 갔어도, 그토록 원하던 의대에 갔어도
나의 완벽주의 성향상, 안정지향형인 성향상
지금보다 내가 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 덕분에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 덕분에 미성숙한 학생들마저도 그저 사랑스럽게 다가오며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학생들로부터 매번 감사 인사를 받는다.
또한 보건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의 반응을 확인할 때마다 엄청난 도파민 샤워에 빠지곤 한다.
어떤 대학,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인생의 다른 갈래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졌다.
오히려 아직도 어떤 대학을 나왔다고 자랑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 사람은 아직 20살의 성취에 머물러있구나.
물론, 그 대학을 가기 위한 노력과 성실함도 대단하지만
삼십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지금은
내가 어떤 대학을 나왔나보다
내가 어떤 능력이 있고 무엇을 할수있은 지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밤새도록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늙고 싶은지, 어떻게 죽고 싶은 지 이야기하며
우리가 각자 바라는 방식대로 살아가고
원하는 방향으로 늙어가고 웰다잉을 준비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초 매순간 행복할 순 없겠지만
대부분의 시간들이 각자 정의한 행복대로 행복했으면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