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정박합니다

by 쏘다님



열 폭 치마폭으로 감싸는 거지.



이래서, 그런 말을 자주 하셨군요.

아빠의 정신 없음,

동생의 철 없음,

나의 싸가지 없음을 다 짊어지고

가족을 먹여 살리며

살림까지 챙기시려니.

어찌 그리 다 하셨소?


나는 못하겠습니다.

일 하나 시작하는 것조차 벅차

억지로 꾸역 꾸역 발을 뗐는데,

당신이 감당하셨던

백분의 일 정도가 더해졌다고

이렇게 무너집니다.

이걸 어찌 하셨소, 그리?


맞습니다.

더 큰 아픔도 눈물 없이 넘겼었죠.

어찌 그리 잘 참아내냐 하셨죠.

내가 이리 힘든데,

너는 어찌 살아내냐 했었죠.

당신이 옆에 계셔서 그랬나봅니다.

지금은

산들바람조차 태풍이 됩니다.



눈은 벌겋게 익어버려

눈물이 양볼마저 달굽니다.

목 안은 잔뜩 부어

울음조차 삼켜지지 않습니다.

다 놓아 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놓아지지가 않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아귀에 힘만 빠집니다.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의무감의 무게가 한 톨도 없는 곳으로.

비록 찰나일지라도,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무엇을 위해 돌아가야 하는지.

여기 이렇게 주저 앉아

답없는 하늘만 쳐다봅니다.


곧 지천명입니다.

그런데도 하늘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큰 뜻이 있는 것인지.

나를 데리고 어디까지 가실런지.

나는 당신처럼

넓은 마음도

강한 정신도

넘치는 사랑도 없는데 말입니다.

여비도 없이 쫓겨난 행랑객 같습니다.


바다에 뿌려달라하셨죠.

너처럼 쏘다니기 좋아하는

그런 아이의 발길이

세계 어느 바다에 가서 닿아도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아직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발걸음이 멈췄나봅니다.



이 바다엔

당신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행일런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보내드리기 전까지

무엇도 놓지 않을겁니다.

어찌되었건 주먹을 풀지는 않을겁니다.


그저, 잠시만 앉아 있겠습니다.

아주, 잠시만.





주행거리 : 213km

걸음수 : 0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