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가지 않는 리허설이 회사를 가기 위해서라고?

by 쏘다님


많이도 먹네.


강변북로는 한산했던 적이 없다. 월요일은 월요일의 이유가 있고, 오전은 오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유가 없는 것마저 이유가 되어서, 차들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너무 멀다.

가야하는 거리보다 가는 길이 고달프다. 두 시간 운전 후, 휴식을 강조하는 음성 안내가 나올 타이밍이니, 이 정도 연료 게이지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돌아가는 길엔 이 아이, 밥을 먹여야겠다.


아니, 나부터 밥을 먹여야겠다.

아침부터 공복에 커피만 줄창 들이붓다 보니, 속이 쓰려오려고 한다. 화장실도 가고 싶어진다. 어디에 주차를 해야할지 미리 계산을 해본다. 동선 최적화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서둘러야 하지만, 서두를 수 없다.

주차 자리는 빠르게 찾았어도, 바로 튀어나갈 수는 없다. 방광이 튀어나갈 것 같아도, 이대로 나갈 수는 없다. 화장실 급한 것 따위, 뭐가 그리 창피하냐고? 그게 아니라, 이곳에 온 이유를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그렇다.


들켜서는 안 된다.

바라클라바를 뒤집어 쓰고, 선글라스까지 썼다. 하지만 덩치는 숨길 수 없다(하루 아침에 변장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알아볼 리 만무하다. 자, 이제 튀어 나가자.


메뉴가 떠올랐다.

절박한 문제 하나가 사라지면, 준비된 다음의 문제가 부상한다. 비워진 뱃속의 공간만큼 공복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발걸음이 다시 급박해진다. 사는 건 원래 그렇다.


팀장님, 오늘은 딴 거 먹으면 안될까요?

거의 세 달간 '점심, 순대국 어때?'를 묵묵히 참아주다 폭발한 과거의 팀원이 생각났다. 날이 너무 춥다. 이 날씨엔 순대국이 진리다.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다. 오늘도 순대국이다. (미안하다!)


들고 나갈까?

밥 한 톨, 국물 한 방울마저 사라진 뚝배기는 여전히 따뜻했다. 일부러 멀찌감치 주차했으니, 회사 건물까지 가는 길은 추울텐데. 아니다.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 눈에 띄는 행동은 배제하도록 하자.


우측면으로 접근한다.

로비가 바로 보이는 정문은 위험하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작전 실패다. 일단, 건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로비의 문 갯수와 측면 출입구 구조를 확인한다.


이젠 들어가지 않는 일만 남았다.

로케이션의 사전답사는 중요하다. 10여년을 영화판에서 뒹굴었으니,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함께 뒹굴지 않은 사람에게, 별 일도 없이, 이렇게나 멀리 온 사정을 설명하기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성공이다.

주차장 입구도 찾았고, 급할 때 튀어갈 화장실 루트도 발견했다. 며칠 후 있을 프로젝트 기획 발표 내용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동안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전술적 철수 타이밍이다.

탑돌이는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 걸까. 나는 불교가 아니니, 알 길이 없다. 잠실의 사우론 타워만큼은 아닐지라도, 건물은 바벨탑만큼이나 컸다. 그래도 처음보다 조금은 작아진 듯 하다. 이 정도면 됐다.



딱히 더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후랑크 소세지를 두 개나 올려주는 카레집도 찾게 되었고, 맥주가 맛있다는 치킨집도 보였다. 다이어트인에게 그림의 '떡'인 '떡'볶이집도 발견해버렸다. (앞의 두 집도 다이어트인에게 그닥 좋지는 않겠군, 그냥 참고만 하기로)


이곳 만큼은 참을 수 없다.

문방사우를 사랑하는 문구인간으로서 문구점은 외면할 수 없다. 출근 스탯을 위해 현질을 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니까. 촉감 좋은 나무 퍼즐도, 귀여운 미니 스티커도, 신기하게 접히는 에코백도 있다. (업무와는 하등 관계없는 아이템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변태로 오해받을 것 같다.

이 노트는 만년필을 잘 받아줄까? 응큼하게 거미줄 치거나, 속없이 뒤를 내비치지는 않을까? 손으로 이 종이, 저 종이를 연신 비비적대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그냥 나오기로 한다.


저거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아이템 드랍이 발생되는 경우가 있다. 화단엔 툭 튀어나온 돌멩이 하나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추운 날 손까지 호호 불어가며 담배를 태우고 있는 사람들을 긁기라도 하면 어째. 성냥팔이 소녀처럼 측은한 이들을 괴롭히면 안되지.


아무래도 나무 퍼즐보다, 미니 스티커보다, 에코백보다, 돌멩이가 낫지 싶다. 후에, 회사에서 누군가 이건 뭐냐 물어온다면, 요즘 유행하는 문진이라고 우겨볼 수라도 있지 않나.


기계는 정다운 맛이 없다.

정다운 맛의 순대국집에서 시간을 차감해주었음에도, 주차비 정산기는 냉혹한 결산을 내린다. 2만 원 가까운 금액이 더해진다. 이런 뻘짓 비용의 ROI는, 일전에 MBA에서 가르쳐준 적 ...없다. (모르겠다. 학점도 그냥 그랬어서, 가르쳐주었을 수도)



어쨌든 간에, 리허설은 끝났다.



SSO.



# epilogue.


귀갓길엔 나름의 정돈 차원에서

미용실 들러 머리도 다듬었지요.

덕분에 '몽실이'가 되었습니다.

(70년대 후반생 표현 방식으로)

*현대식 표현으론, '삼각김밥'이 있습니다.


다시 자랄 때까지

출근하지 말까요?





- 리허설 장소 @ 일산 어딘가


- 글자수: 2302자

- 걸음수: 3751보

- 주차비 > 국밥값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