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비교적 용감했다.
위 문장에 ‘돌멩이를 들었다’는 제목이 곁들여지니,
꽤나 위험하게 들릴 수 있다. 안다.
여기서 전제가 과거형이라는 것이 포인트다.
지금의 나는, 아직, 아무 데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게 왜 가방에 들어 있는지,
그걸 의아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어색했다.
용감함이 상실된 4년여의 시간(더불어 많은 것들이 상실된) 후,
이렇다 하게 극복 내지는 회복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시 웅크릴 이유도 없는 상태라는 것이 애매했다.
호기심 강하고, 변덕도 빠르고, 결정은 거침없었기에,
경계에 있는 ‘모호한 나’는 무척 생소했다.
털이 죄다 뽑힌 닭 같았다.
털이 죄다 뽑힌 적도, 닭이 된 적도 없어,
완벽한 비교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런 모습이다.
‘알을 깨고 나온 새’ 같은 형이상학적 비유가 아니다.
처음 드러난 생살이 정말로 아려 오는 피상적 감각이다.
그렇다고 불안하지는 않다. 동시에 편안하지도 않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반재반출(반은 재택, 반은 출근) 형태이니,
반인반수 같은 하루인들 어떠랴 생각하기로 한다.
좋아하는 텐동 가게 앞, 펄럭이던 노렌이 떠올랐다.
문을 활짝 열어 둔 것도, 그렇다고 닫은 것도 아닌,
그 어딘가의 상태로, 나도 그렇게 펄럭이기로 한다.
그닥 무겁지도 않았다.
오늘의 발표 자료가 담긴 노트북도 넣고,
바닐라 향 커피가 가득한 텀블러도 넣고,
새로 산 립밤과 소분한 향수를 담은 파우치도 넣고,
(왓츠 인 마이 백이 아니니까 그만하자)
돌멩이는 꺼낼까 하다 그냥 두기로 했다.
왜 여기 있는지 불분명한데, 있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회사 건물은 골리앗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벨탑 첫인상에 비하면 많이도 작아졌다.
돌멩이는 그래서 가져왔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다윗의 그것과 같은 종류의 물성은 아니다.
아무 말 없는 이 아이는 원래 여기 있었다.
나와 함께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잠시 다녀왔을 뿐.
그렇다. 난 얼마 전에도 여기 왔었다.
한 바퀴 더 돌기로 한다.
그간 출근 흉내도 내어 보았고, 뻘짓 같은 리허설도 했었다.
이건 최종 드레스 리허설 같은 것이다.
아무리 어색하다 해도, 오늘은 되돌아가는 날이 아니다.
또 다시 리허설을 하기에는 복잡해진다.
최최종, 찐최종, 진짜진짜_최종, 지금것_다_아니고_이게_최종,
이렇게까지 헷갈리기는 싫다.
돌멩이처럼 걸었다.
어떤 역할이나 쓸모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가방에 담겨 그저 이동한 것처럼.
덜 다듬어진, 자격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작은 돌멩이,
그 존재와의 조건 없는 동행이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몇 바퀴 더 돌 수도 있었고,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어느새, 그 두 가지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가방 속에서 돌멩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꽤 또렷했다.
SSO.
- 최종 리허설 : 일산 어딘가
- 글자수 : 1395자
- 걸음수 : 3163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