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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의 날들 Dec 25. 2023

그 영화, 이런 글 - 2

시민 케인, 오손 웰즈



삶의 마지막의 또 마지막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은 과연 어떤 말로 세상에 작별을 고할까. 가족에 대한 감사의 말일까 사랑했던 이에 대한 인사일까, 아니면 남은 사람들에 대한 당부일까.  



영화 시민 케인은 주인공 케인이 숨을 거두는 마지막을 강렬하게 조명하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 하나를 전면에 내세우며 영화의 포문을 연다. 케인의 죽음 이후 주변인들이 밝히는 각기 다른 모습의 그의 삶은 요즘 영화에서 볼 법한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고 감독은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한다.     





영화는 케인이 남긴 수수께끼 같은 말, 로즈버드를 화두로 던지며 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엿본 그의 삶, 그리고 추리 형식을 빌려 '로즈버드'의 뜻을 찾아내는 것까지 전개의 흐름을 지루할 새 없이 펼쳐낸다. 또한 감독은 다채로운 카메라 기법과 명암을 이용한 조명효과 등을 사용하여 풍부한 미장센으로 화면을 채우며 영리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의도적으로 흡사하게 풀어낸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출입 금지를 뜻하는 No TRESPASSING이란 표지를 단 철조망을 훑으며 위로 이동해 영화를 열고, 끝에서는 얌전히 아래로 철수하며 묘한 정리감마저 부여한다.     



초반부 케인의 얼굴 전체가 아닌 입 부분만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시켜 로즈버드라는 단어를 끌어냄으로써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단어는 한층 더 의미를 가진다. 중반부에서 수잔의 오페라 하우스를 찾는 카메라는 화려한 네온사인을 지나 수잔의 공간을 위에서부터 내려다본다. 빗속을 뚫고 내부로 직접 들어가는 카메라 워크는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다른 수잔의 공간을 침범해 가며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또한, 케인의 유년시절을 조명할 때 한 화면에 작은 창 밖으로 보이는 어린 케인을 포함한 세 명의 인물이 딥 포커스로 또렷하게 잡히며 그들은 모두 같은 크기의 중요성을 부여받는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케인이 가장 작지만 또렷이 화면에 잡히는 것, 또한 자신의 미래를 두고 벌이는 어른들의 설전에 케인의 말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후반부에 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유리구슬을 소중히 감싸 쥐고 걸음을 옮기는 장면에서 대저택의 거울은 무기력하고 쓸쓸한 그의 모습을 수없이 복사하여 의무적으로 비춘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 내내 관객을 애태우다 극 초반에 던져놓은 화두를 마지막에서야 수습한다. 그의 사후, 그의 삶을 차지했던 많은 물건들을 훑는 카메라. 그것들을 소각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120분 내내 그토록 인물들이 찾아 헤매었던 로즈버드와 충격적으로 대면한다. 바로 부유해지기 전, 무거운 삶의 시민이 되기 전 그의 순수성이 집약된 작은 썰매가 로즈버드의 실체였다. 그의 삶을 차분히 조명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그에게 이미 충분한 연민을 느꼈을 관객에게 그의 로즈버드는 짧게 그 모습을 보인 뒤 이윽고 검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흩어지고 그렇게 영화도 끝을 향한다. 첫 장면에서 철조망을 타고 올라가던 카메라는 다시 얌전히 철조망을 내려와 출입금지 표지를 보여주고는 멀리 로즈버드가 타고 있는 거대한 대저택 제너두를 비추며 끝을 알린다.   

  




케인은 분명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화려함에 어울리지 않는 쓸쓸함 뿐이었다. 많은 것을 이루고 얻었으나 그의 마지막은 공허함과 무의미했음을 상징하는 대저택 제너두에서 유년시절을 떠올리는 쓸쓸함으로 점철되었을 뿐이다. 감독은 어쩌면 모두들 잊고 있었을 인생의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영화가 끝나며 관객들은 각자의 삶의 마지막에 읊조릴 자신만의 로즈버드를 떠올릴 것이다.     

잊고 살았던 당신의 로즈버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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