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그곳이 감옥인지 모른다. 탈출을 꿈꿀 수 없다. 현실의 고통이란 주관적인 것이어서 익숙해지고 무뎌지면 그런대로 견딜만하다고 느끼게 된다. 5성급 호텔만 누려본 사람에게는 감옥에서의 하룻밤이 가혹한 경험이겠지만, 그곳이 세계의 전부인 줄 아는 사람에게는 무덤덤한 일상일 수 있다.
육체의 불편과 고통뿐만 아니라 마음의 감옥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평생 모든 사람들이 나와 다르지 않게 감정에 휘둘리며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사는 줄 알았다. 반복되는 상처를 가까스로 치유해 가며 세상 풍파에 적응해 가는 나는 그나마 나은 형편 같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여태 살아온 안온했던 울타리를 벗어나 전혀 새로운 지역, 새로운 공동체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업무를 해보니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내가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고 생각했던 그 감정의 진폭은, 어떤 사람에게는 감지조차 못할 수준의 미미한 파동이었다. 내 진폭의 열 배, 백배의 기울기를 가진 감정의 파고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사기 치는 이웃에게 돈을 마구 빌려주고, 감정이 상하면 이유 없이 어린 자녀의 행동거지를 트집 잡아 분노를 발산하기도 했다. 기물을 파손하거나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우울에 빠져 수시로 자해와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통제불능의 감정에 장악당해 이성을 잃는 사람은 허다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나와 내 동료도 감정의 바닥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지난번이 최악인 줄 알았는데, 이번 일에 비하자면 약과였고 나날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가까스로 헤엄쳐 나와 잠시 숨통이 트일 때면 살아있는 기쁨에 취하는 찰나도 있었다. 이 찰나를 기억하며 또 얼마간 수렁을 견뎌내고, 그렇게 업다운의 그래프 밖으로 헤어 나올 수 없이 평생을 살아가겠구나. 쉴 틈 없이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그게 인간의 삶이고 인생이구나.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체념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창창한 남은 인생을 구제하기 위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도 했다. 이 극단적인 감정의 파고가 직장, 사회생활 때문이라면 벗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표를 냈다. 이 일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그렇지만 환경의 변화로 느끼게 된 해방감과 평화는 잠시 뿐이었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의 나도 늘 행복하고 평화롭지는 않았다는 것을. 진폭이 작았을 뿐 요동치는 감정 속에서, 언제나 머릿속은 복잡했고, 행복과 불행의 사이클이 균등했다고 해도 고통스러운 경험이 더 마음에 많이 남아 평안한 시간에조차 다시 그런 고통을 겪게 될까 봐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는 것이 내가 그토록 돌아가고자 했던 '예전의 삶'이었다.
내가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었던 걸까?
결코 아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다. 낙심할 때도 있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기도 잘하고, 고통을 극복하는 나름의 방법도 터득했다.
세속적인 시선으로 볼 때에도 따뜻한 가정의 돌봄 속에 좋은 교육을 받고 사회가 부여한 시기별 과업을 무난히 달성해 가며 잘 자란 청년이었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이상적인 결혼, 가정, 본받고 싶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호감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따뜻한 말들을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뭘 모르는 소리'라고 자조할 정도로, 그 태평하고 마냥 행복해 보이는 외양 안의 내 마음은 때때로 지옥을 오갔다. 물론 이전에 내가 목격했던 감정의 파고가 극단적으로 높은 이들에 비하자면 아주 잔잔한 일상이겠지만,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찼다는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에게는 떨어지는 빗방울조차 가혹한 시련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깟 걸 힘들다고 한다고 가소롭게 여기면 안 된다. 서두에도 적었듯, 고통이란 주관적이어서 별 것 아닌 걸로 보이는 일이 누군가에겐 죽고 사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은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준다'라든가, '나를 죽이지 않는 공격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경구를 되뇌며 다시 일어나 보려고 노력한다. 나도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길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견딜 수 있는 것이 늘어날수록 더 센 고통이 오고, 내가 강해지면 상대는 더 강해진다. 끝이 없는 것이다. 하나의 퀘스트를 통과하고 나면 천국이 펼쳐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퀘스트가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냉탕 온탕을 오가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냉탕에서는 온탕의 따스했던 기운을 추억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온탕에서는 다시 냉탕으로 던져질 순간이 두려워 찰나에 불과할 이 온기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온기를 느끼는 순간만이라도 절실하게 그 순간을 잡아보기로. 잡념이 이 따뜻함을 방해하지 않게 머리를 비우고, 두려움은 내일의 일이니 이 순간만큼은 집중해 온전히 나의 몸과 마음을 데우자. 평화와 기쁨과 행복에 온전히 취하는 것조차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어도 가능한 일인지조차 모르겠고, 무얼 목표로 어떤 태도로 살아가면 삶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질지 알 수가 없었다. 방향도 과정도 모르겠고, 살 수록 더 혼란스러우니 선험자들의 경험과 조언을 참고하고자 많은 책을 읽었다. 자기 계발서, 심리학, 종교, 영성까지 문학/비문학을 가리지 않고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해답을 갈구했다. 과연 그런 노력들이 나를 구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