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이 수월해 보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우월한 유전자와 높은 사회적 계급, 물질적 풍요를 안고 태어난 사람의 인생은 평범한 사람들과 출발점부터 다른 게 당연하다. 출발점뿐이 아니다. 자갈밭을 짚신 신고 뛰는 사람과 날이 잘 갈린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트랙을 도는 사람의 경주는 기록도, 과정의 고통도, 결승점의 의미도 다르다.
시작부터 다른 사람과 내 인생을 비교하며 비관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다. 다만 나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중에 좀 더 수월하게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인드가 궁금했고, 덜 아프게 성장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계발서와 자수성가한 이들이 쓴 책을 두루 찾아 읽었다.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바라던 결과가 주어지지 않을 때나, 상황이 어렵게 꼬여만 갈 때, 문제가 해결은 안 되고 첩첩산중으로 점점 커져만 갈 때... 낙담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당장의 문제 해결도 나를 힘들게 했지만 '앞으로 계속 이렇게 일이 흘러간다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더 큰 고통이었다. 인풋과 아웃풋 사이의 관계를 모르면 사람은 혼돈에 빠진다. 인간은 원인과 결과를 끝내 연결해 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랄까. 의미를 알아야 하는 존재, 의미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알아내고자 한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이 일이 왜 일어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였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번에는 이런 결과를 맞닥트리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떤 일들은 정말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납득이 안되다 보니 혼란스러웠다. ABC다음은 D인데 엉뚱하게 # 이런 결과로 아예 장르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짐작할만한 단서라도 있었는데 도저히 이런 결과의 합당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 괴로워하는 내게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느꼈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늘 좋은 성적을 받았던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적이 안 나와서 어린 시절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건 네가 제대로 공부를 안 했으니까 그랬겠지." 지적을 하니, 친구가 "제대로가 뭔데? 넌 열심히 노력한 너한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원인을 찾았어? 난 못 찾겠던데?"
그렇다.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여태 나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적이 잘 나오고, 어려운 시험도 한 번에 턱 붙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고 구하면 다 이루어지는 삶을 살았기에 그 사이에 어떤 규칙이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1+1=2처럼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노력에 대가가 주어졌다면 그 자체로 운이 좋았던 것이다. 죽도록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들이 허다한데... 여태 그걸 규칙이라 믿고 산 자체가 운이 매우 좋은 사람이었던 것. 합격과 불합격은 한 끗 차이로 결정되는데 늘 그 한 끗이 앞서서 라인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엔 생각했다. 죽도록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들은 마인드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자기계발서나 성공학 관련 책들에 영향을 받다 보면 그런 사고를 하게 된다. 성공하는 마인드에는 비밀이 있고, 마인드셋이 사람을 성공으로 이끈다. 심지어 '시크릿'이라는 책에서는 상상을 하면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시각화가 미래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다고...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마인드셋과 긍정적인 사고방식, 도달하고 싶은 미래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일을 실천하며 신이 났던 때도 있다. 심지어 작은 소망들이 하나둘 이루어지기라도 하면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된 양 믿음이 더 커졌다. 그래, 이렇게 살면 되는 거구나.
그런데 그 모든 게 사실은 운이 좋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성공학 책의 저자들은 내내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세상의 진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규칙과 질서가 없다는 게 오히려 진실에 가까워 보였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똑같이 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을 때, 원인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30대 초반에 큰 실패로 시련을 겪은 적이 있는데 십 년 이상 곱씹어도 여전히 원인은 알 수 없다. 당시 내가 실패 그 이상으로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원인을 내 안에서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인드에 문제가 있었나? 내 부정적인 생각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나?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세상에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많다. 아니 거의 전부이다. 신의 눈에는 인과관계가 보일지 모르지만 인간의 시야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 무질서, 우연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살아온 삶에 인과관계가 분명하게 보인다면 대단히 운이 좋았던 것이니 감사해야 한다. 남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할 일은 아니다. 다른 누군가는 똑같이 해도 실패할 수 있다.
여태의 내 성공이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님을 인정하게 된 것은 '이유 없는 실패' 덕분이었다. 이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로 하여금 삶과 세상에 대해 더 탐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는 데에 이유가 있겠는가.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내 노력은 내 노력일 뿐, 결과는 나와 상관없다. 이렇게 무질서한 세상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