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맛본 삶의 지혜
책을 읽다 눈길 가는 문장을 만나면 손으로 옮겨 적곤 한다. 날이 선 연필로 서걱서걱 한 자씩 적어 내려가다 보면 글자들이 내면에 깊숙이 자리하는 느낌때문이다.
유독 여유로왔던 날, 삐뚤빼뚤한 책장이 거슬려 정리를 시작했는데 조그마한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맘에 드는 문장을 적어 둔 모음집이었다. 그러고보니 2년 전 여름에 읽었던 책들 중에는 유독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글들이 많다.
1. 시옷의 세계 - 김소연
스물네 번째 페이지
<속내> - [사람의 속내가 빤히 보일 때는 내가 좀 움직여보자. 너무 한자리에 앉아 있었단 증거일지도 모르니까. 사람이 너무 안 보일 땐 그땐 좀 진득하게 앉아 있자. 너무 움직였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니까.]
: 책을 읽고 반성한 게 얼마만이었는지, 바로 옮겨 적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관계에 있어 왠지 모르게 편파적으로 행동해 왔던 것 같다. 속이 보일 땐 얄팍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너무 안 보일 땐 불투명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 남이 바뀌기만을 바랐지 내가 행동을 달리해보자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 준 고마운 페이지이다.
2. 밤은 책이다 - 이동진
열여덟 번째 페이지
[말하자면 밤은 치열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부드러운 동화가 시작되는 시간일 거예요.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치고 나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소년과 소녀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쓴 편지를 낮에 부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낮의 어른은 밤의 아이를 부끄러워하니까요. 하지만 밤의 아이 역시 낮의 어른을 동경하지는 않을 겁니다.]
: 어릴 적 밖에서 해가 질 때까지 뛰어 놀다 집에 오면 바로 찬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다 마시고 나면 캬하- 소리가 절로 나오곤 했다. 딱 그때의 느낌이었다. 평소 밤을 잘 새곤 하는데, 고요함이 만든 평화로움 때문인지 공부도, 책 읽기도, 끄적거림도 훨씬 집중이 쉽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왜인지 알 것 같았다. (흔히들 밤에 자기소개서를 쓰지 말라곤 한다. 어쩌다 한 번 썼더니 낮에 손과 발이 없어질 뻔했다.)
밤에는 객관성이 주춤주춤 거리니, 밝은 시간대의 자신과 종종 구분 짓게 되나 보다. 낮의 어른들이 밤의 아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도, 밤의 아이 역시 낮의 어른을 내려다 보지 않아도 된다. 낮에도 '나'고, 밤에도 '나'니까.
3. 여긴 지금 새벽이야 - 김신지
백삼페이지
[결국은, 그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현실 자체보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행복이라 믿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이 만족스러울 때 보다 싫을 때가 더 많을 것 같다. 때론 고개를 절레절레할 만큼 싫을 때도 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말했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은 불행할 것이다."라고.
몸서리처지게 싫을 때마저도 우리는 무언가라도 가지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다. 아무것도, 어떠한 것도 가지지 못한 이는 없다. 현실이 아무리 예쁘게 보려 해도 밉게 보일 때는, 예쁘게 보려는 태도만으로 진짜 예뻐질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난다. 행복이라 말하기에 너무 소소하고 사소하다고 느껴질 때, 그래도 행복이라 믿으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 태도와 믿음이 현실을 지탱하는 두 축이 아닐까 싶다.
+ 몇 페이지인지 적혀있지 않은 부분
[떠나고 싶다면 당신 부디, 지금 발걸음을 떼기를. 떠나지 못할 이유가 수십 가지 있어도 여행이란 언제나 떠나야 하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나는 '언젠가'를 위해 오늘치의 행복들을 놓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막연히 '뉴욕'에 가고 싶었다. 상류층 고등학생 이야기를 다룬 미드 '가십걸' 때문이었는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화려한 배경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이유가 두루뭉술하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 영어실력은 주머니 사정만큼이나 여전히 비루하지만, 가보고자 하는 의지는 그때보다 강해진 것 같다
늘 돈이 더럽게 없어, 용기가 없어, 총 맞으면 어떡해, 영어 못해, 가자마자 테러 터지는 거 아닌가 하며 시간낭비 참 잘도 해왔다. 다시 돈을 모아서 이번엔 정말 구체적으로 마음을 잡고 다음 해에는 꼭 가자고 마음먹었다. 늘 떠나고 싶었는데 마음만 세계일주 다녀왔었기에. 아르바이트로 흘린 땀과 번 돈은 급급하게 사느라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그동안 떨어진 면접과 써 내려간 자기소개서에 들인 에너지들을 밑거름으로 해서 '언젠가'를 위해 이젠 푸념이 아닌 하루치의 행복들도 알아가며 살아가 볼 참이다. 그것도 역동적으로!
4. 시간을 파는 상점 - 김선영
백칠십팔 페이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사람들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해결 못할 일은 없다고 했다.]
(자음과 모음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인데, 작년에 우연찮게 읽게 되어서 작가 강연회까지 다녀왔다. 장르상 중고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내용이었지만 새로 나온 소설책에 싸인까지 받았으니 손해 본 일은 아니었다.)
분주히 주어진 일을 처리하며 사는 것도 정신없는데 그 와중에 사람 때문에 생기는 일이 허다하다.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숱하게 감정 소모할 일도 많다. 그리고 걱정한다. 영영 해결할 수 없을 까 봐 혹은 해결하기 너무 벅찰까 봐. 그럴 땐 이 문장을 되새긴다. 그러면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폴폴 생긴다. 생각해보면 로봇이랑 문제 생긴 것보다는 낫다. (언젠가는 로봇과의 관계 개선, 로봇 설명지침서, 로봇그들은누구인가 하는 류의 책들이 쏟아지겠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파노라마처럼 촤르륵 펼쳐지고 섬세하다. 그러니 로봇 vs 사람 보다 사람 vs사람인 게 훨씬 해결이 쉬울지 모른다. 답답할 땐 무한 긍정을 끌어오는 것도 꽤 괜찮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사람이니까. 그래서 많이들 사람이 해결 못할 일은 없다고 하나 보다.
5. 나는 브랜드다 - 조연심
삼백삼 페이지
[타이밍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타이밍을 기다리느라 타이밍을 놓친 적이 많다. 알아서 타이밍이 오는데 숨 고르고 있다가 눈 뚫어지게 살피고 제때 잡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타이밍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고 심지어 타이밍 잡느라 시간마저 모질게 가버렸더랬다. 아! 되새겨보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수동적인 자세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 문장 그대로 타이밍은 만드는 것이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타이밍을 직접 만들고 꽉 쥐면 되는 거라는 걸 이 때야 알았다. 이참에 새로운 마음으로 움직여보아야 겠다.
어릴 때는 자주, 많이 넘어졌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툭툭 털고 쿨하게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도 마음도 커진 후엔 넘어진 적이 없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예 넘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안 넘어지려고 다리에 힘도 꽉 주다 오히려 쥐난 적도 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실패 자체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몸을 사려왔기 때문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자 명언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열심히 보고 나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부득이하게 넘어져야 한다면 넘어지자. 다시 일어나면 되지!
우리 삶의 최대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데 있다.
-올리버 골드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