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칙연산

여름을 꺼내보다 - 3

뜨뜻했던 시간들

by 렛츠쏠


올해, 얼마 안 되는 잘 한일 중 하나 : 할머니 자주 뵈러 간 일.


해가 내 옆에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그 여름날의 여행) 통영과 마산여행을 마친 후 올라가는 길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시간을 꺼내봅니다.

해가 가까이 있는 듯했던 여름 날 오랜만에 만나 뵌 외할머니와의 17시간-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내일 갈 거 오늘 뭐하러 왔냐고 그러신다. 아쉬운 마음이 크신 듯하다. 일부러 도착하기 두 시간 전에 전화를 드렸는데, 수레를 끌고 그 더운 날 큰 손녀가 온다고 수박을 사다 놓으셨나 보다. 수박귀신인 걸 우예 아셨는지. 고개가 땅에 닿을 만큼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뵐 때마다 기력감소가 느껴진다. 어느 덧 아흔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속상한 마음에 짜증을 내게 된다. 반 년만에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중간에 들리기 잘했지 싶었다. 예상대로 잠을 푹 잘 순 없었다. 새벽 2시부터 바스락 바스락. 내가 자려 할 때 할머니는 기상이다. 자다가 머리카락도 밟히고 발가락도 밟히지만 아침엔 다크서클 부자이지만 그래도 좋다.

아침이 어느 때보다 금방 왔다. (고통 속에서 잠을 잔 것도 한 몫 했지 싶다!)


헤어짐은 늘 아쉽다. 굳이 배웅해주시겠다고 옷을 입으시고 내 손을 잡고 힘겹게 계단을 밟으셨다. 내 키가 작아서 허리 잔뜩 굽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게 참 수월했다. 키 작은 게 나쁜 것만은 아닌가 보다. 택시를 타고, 할머니가 멀어질 때 까지 손을 흔들었다. 어릴 적 큰 소리로 잔소리하던 할머니, 누가 괴롭히면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와 호통치던 할머니, 음식 솜씨가 장인급이었던 할머니는 이제 모든 게 버겁지만, 손녀를 맞이하고 배웅하는 것은 여전히 그때의 할머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은 대구에서 온 이모와 사촌동생과 함께 역 근처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먹었다. 할머니 댁에 들린 덕에 잠깐이지만 자주 못 보는 이들과 함께 마주하고 맛난 것도 먹고, 참 좋다!

고생할 각오 하고 뭔가 비장한 마음으로 떠났던 이번 여행!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어와서, 2박 3일 동안 함께했던 가방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이 두둑하다.


+ 가을에 여름을 꺼내니 반갑다. 그때는 온갖 고민에 대한 답도 얻고, 마음을 가볍게 하고자 떠난 여행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여전히 확답은 못 얻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못 알아 낼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내가 답을 만들어가는 게 빠르지 않을까. ++그 답을 정답으로 만들어가려면 바지런히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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