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중입니다.
남편은 퇴사를 결심했고,
나는 그날 저녁 된장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신랑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 자기한테 할 말 있는데, 조만간 회사 그만둘 것 같아.”
남편의 시선은 티비와 나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듯 흔들렸고, 둘 곳 없는 손은 애꿎은 소파만 만지작 거렸다.
그가 이 부서로 옮긴 뒤로 계속 힘들어했던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정거장이 될 거라는 것도 예상은 했었기에 지금이 그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과 동요보다는 마음이 묘하게 차분했다. 회사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이제는 조금 숨을 쉴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랑은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 자기가 지금처럼 편하게 계속 쉬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아서 미안해서 그렇지…”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하루하루 나의 여유로운 시간을 지켜주겠다고, 지옥 같은 시간을 참고 버텨왔을 신랑의 지난날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해서 숨이 막혔다. 마치 내가 그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것 같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고생한 신랑에게 마음 깊이 고맙다. 매일 치열한 세상 속에서 혼자 묵묵히 버텨준 것,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언제나 나를 먼저 챙겨준 것, 그 모든 날들이 생각할수록 눈부시게 고맙다. 아무 말 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도 늘 웃으며 돌아온 그의 모습은 내게 언제나 안심이고 위로였다. 그가 버텨준 그 시간 덕분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올 수 있었다. 이번 일로 신랑이 자신을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상처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동안 남편이 만들어준 시간들은 우리를, 그리고 나를 지탱해 준 고마운 날들이었다.
이번 변화가 시련이 아니라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조금 더 편안하고 따뜻한 길로 가는 새로운 시작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물렀던 우리에게 조금 낯선 변화가 찾아오겠지만,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서 있었기에 이제는 다른 풍경을 마주해 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요한 일상에 변화를 던진 건, 어쩌면 우리 인생이 건넨 작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건 지금이 아니면 결코 받아볼 수 없는 인생의 초대장일지도...
변화는 아직 낯설고,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오늘 저녁엔 당신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나 끓여야겠다.
그렇게 작은 하루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시간도 웃으며 꺼내볼 수 있겠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우리 둘만의 '다시 시작하는 법'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