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중입니다.
지금 이 감정을 표현할 정확한 형용사를 찾지 못했다.
퍽퍽한 고구마를 물 없이 꿀꺽 삼켜 속이 콱콱 막힌 답답함, 심장까지 짓누르는 숨 막힘.
이력서를 들키고(?) 난 후에도 남편은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은 척한 얼굴로 별 말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저릿했지만 남편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또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본인 스스로도 마음의 정리가 안된 처음 겪는 생소한 감정일 테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성격도 아니니 아마도 표현하기가 어색하고 불편하겠지.
그래서 나도 묻지 않았다.
혹시나 겨우 버티고 있는 남편이 나의 관심에 부여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을까 봐...
하지만 가끔씩 멍하게 다른 생각하는 게 틀림없는 얼굴로 티브이를 보는 척 앉아 있을 때,
본인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삐져나올 때,
기상 알람이 울려도 눈만 끔뻑거리며 일어나지 않을 때마다 나는 남편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아버님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보청기 구입 매장과 환불 문제로 싸우고 있다며 답답하다고 하소연하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은 덤덤한 척
“뭐 그런 일이 있었대. 근데 일이 좀 커질 거 같아서 내가 그쪽이랑 통화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으신가 봐. “
라고, 막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던 나에게 말했다.
나는 남편의 얼굴에서 난감한 기색을 느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들고 있던 수건을 힘껏 집어던지고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 지금 남편이 힘들어요. 내 남편 좀 내버려 두시라고요!!!!!‘
라고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 상황에서도 짜증 한 번, 화 한 번 내지 않는 남편을 보니 코 끝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금세 차올랐다.
끓어오르는 짜증과 분노만큼이나 꽉 쥐고 있던 수건으로, 최대한 자연스레 물기를 닦는 척 눈물을 훔치고는 아무렇지 않게
“아 그래?”라고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렸고,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뒤,
신랑의 상황을 알 턱 없는 부모님께
상상으로도 하면 안 되는 불효 막심한 생각을 한 나를 자책했다. 아마도 신랑을 지켜주고 싶어서 꾹꾹 참으며 기다렸던 시간들이 이렇게,
잔인한 생각이 되어 터져 나오기를 벼르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 자신이 그만큼 답답하고 속상했던 것 같다.
어떤 일탈도 없이 묵묵히 나와 가족 곁을 지켜주는 신랑은, 본인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법을 모른다.
집과 회사 말고는 술도 취미도 모임도, 갈 곳도 없이,
이렇게 힘든 일이 있을 때조차 집에서 내 눈치 봐가며
표정관리, 감정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냥 나는 그렇게 자신을 꽉 잡고 있는 남편을 지켜주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설명도 하고 싶지 않을 남편을 모른 척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지금 남편에겐
꽉 잡고 있는 이성의 끈이,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나는 한쪽 소파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가
다른 한쪽 소파에 가만히 앉아 남편이 보던 TV프로를 보며 늘 그랬듯,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tv를 보며,
서로 키득거리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난을 쳤다.
그날 밤 우리는 웃었고,
아마 속으로는 울었을 것이다.
착한 남편은
최근 더 따뜻하고, 더 다정하다.
나는 종종
혹시 남편이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혹시 내 노력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일까... 생각한다.
뭐가 됐든 남편이 조금은 편해진 건 아닐까 착각하며,
오늘도 남편 옆에 앉아
TV 속 프로그램과 콩이의 예쁜 짓을 함께 나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걸,
우리는 서로의 등을 토닥이는 침묵 속에서 배운다.
남편은 묵묵히 짐을 짊어졌고,
나는 그 짐이 너무 무겁지 않도록
늘 곁을 지키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말없이,
오롯이,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