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현실을 바라다보다
누가 그랬다. 위로 올라갈수록 정치 싸움은 더 무섭고 더 차가워진다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는 높으신 분들이 늘어가던 하루하루. 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우리 선조들의 속담은 분명 경험에 기반한 것이라는 걸 몸소 깨달으며, 눈에 띄지 않도록 납작 엎드려 숨죽인 채 고민을 시작했다. 나, 이대로 괜찮을까?
이직 후 쉴 새 없이 달려왔던 지난 7개월이었다. 입사 이전, 전 직장의 기억이 까마득했다.
전 직장은 총 7년을 꽉 채워 다니고 퇴사했다. MBA 졸업 후 나름 치열하게 노력하여 입사한, 이름만 대도 전 세계 모두가 다 아는 아주 큰 테크 회사. 동양인 여자로는 조금 특이하게 세일즈 쪽 업무로 입사한 후, 4년 동안 정말 B2B 세일즈의 중심에 있었다. 코비드 도중 사업개발 (Business Development) 쪽으로 옮긴 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AR/VR, Web 3, AI 등 재미난 테크놀로지들은 죄다 섭렵했다. 단언컨대 나의 7년은, 내 연차의 직원에게 주어질 수 있는 일의 범위 안에서 내가 해보고 싶은걸 모두 다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 자부한다. 그 중심에서 나를 이끌어준 사람들이 있었고, 수많은 팀원들이 친구가 되었으며, 하루하루 정말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직장 7년 차, 그토록 재미났던 회사도 어느샌가 지루해졌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같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이대로 안주하는 것이 맞는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상사복은 있네 하며 버텼는데 가장 좋아하던 상사가 퇴사를 했다. 3개월 후, 그녀가 나에게 따라오라 러브콜을 보냈을 때, 퇴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이후 정말 앞만 보고 달렸는데. 그 힘찬 달리기의 말로가 이렇게 되다니! 가만히 되짚어 보니 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대학원 이후 나름 탄탄대로였던 회사생활이었는데, 갑자기 곤두박질쳐진 느낌.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건, 현재 회사 안의 어느 누구도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오 맙소사. 나 같은 고급인력(?)이 이렇게 낭비(??)되다니!
마치 대학원을 갓 졸업하는 시기의 나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나 무엇을 하고 싶은 거지? 어떤 부서? 어떤 팀? 어떤 사람들? 어떤 회사? 아니 잠깐만, 애초에 내가 이런 선택을 할 깜냥이나 되나?
정신을 부여잡고 나에게 질문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