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7개월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매일 미국 동부 오전 시간에 일을 시작해서 서부 밤 시간에 일을 마쳤고, 캘린더가 미팅으로 꽉 차 있어서 화장실 다녀 올 짬조차 없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바쁜 하루하루 속 정신은 많이 털렸지만 열심히 사는 나 자신에게 조금 취해있었던 것 같다. 잠에 들기 전, 그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열심히 달려봐야지! 하며 은근 뿌듯해 한건 안 비밀.
하지만 매니저가 사라진 이후,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나에게도 합당한 보상이 있기는 했고 (일단 연봉이 50%가 올랐지 말입니다...?) 그녀의 측근으로써 꽤 재미난 일들도 많았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녀가 제시했던 비전과 꿈은 결국 나의 것이 아니고 그녀의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그간의 노력들이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도 억울한데 갑자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니. 매일 혼란스러운 회사 상황와중에 (두 달 사이 매니저가 3번이나 바뀌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뭐지?? 하며 자아성찰의 시간을 보냈다. 뛰면서 내가 뭐 하고 싶지? 크로스핏 하면서 나 뭐가 재밌지? 책을 읽으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그 생각뿐이었다. 헬프미!
일단 가장 확실한 것은, 이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새로운 수족이 되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회사 내 아무도 나에게 재미난 일을 시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존심도 상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오케이 나 같은 인재를 몰라보다니 그것은 내 탓이 아님?!"이라는 마인드를 장착하고 수련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채웠다. 월급 값은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하면서.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기반한 내 나름의 이직 기준을 정하였다.
첫째, AI 생태계와 더 가까운 회사이어야 할 것. 이제 막 이 분야를 시작하는 회사는 싫었다. 현재 회사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탑이지만 AI / 소프트웨어는 젬병이었고, 그래서 나의 전문성을 더 키울 방법도, 경험을 녹여낼 방법도 미미하다고 느끼는 참이었기에 더더욱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는 여전히 배고팠다 (I'm still hungry!). 새로운 기술의 선두주자인 회사에서 더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하고 싶었다!
둘째, 컨슈머 테크 관련 회사 선호, 서비스뿐만 아니라 하드웨어도 개발 중이면 더 좋음! 난 원래 소비자 기기 (consumer devices)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나에게 소비자 기기는 한 사람의 삶의 질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고, 특히 개인이 AI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기들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손안에 기기를 정복하는 자가 미래 AI 활용방법을 결정할 것이라 생각하고, B2C (Business to Consumer)을 중점으로 둔 회사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 회사가 B2B 중심인 회사라서 더더욱 B2C에 대한 갈망이 컸다.
셋째, 회사 내부의 문화, 리더십 등을 면밀히 따져볼 것. 지난 이직 시에는 매니저 한 명만 보고, 나의 직속 팀원들이 좋으면 회사 전체의 문화는 나의 매일매일에 큰 영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너무나도 틀렸음을 고래싸움에 등 터지며 배웠다. 회사 내부 문화, 아주 중요하다! 특히 새롭고 공격적인 일을 하는 팀일수록 더더욱!
오케이 나의 기준 선정 완료! 왠지 모든 이직하고픈 직장인들의 기준에 부합할 것 같은 기분은 나의 착각이겠지...?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이직시장에 풍덩 빠져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