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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Oct 17. 2022

2. 나는 왜 짜증이 날까?

짜증나는게 짜증날 땐?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내 기분을 탐사하자 


'짜증은 2차 감정이에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가장 '띵-'했던 이론이었다. 우리는 쉽게 '짜증 나'라고 모든 감정을 퉁쳐버리지만 선생님은 짜증이 2차 감정이라고 했다. 짜증을 심층 분석하고 해부해보면 짜증 속에는 이렇게 다양한 여러 가지가 감정이 섞여 있다고. 그리고 계속 나에게 물었다. 


'왜 짜증이 나요?' 

'아니.. 짜증이 나니까 짜증이 나지.. 왜 짜증이 나냐고 물으시면 저는 짜증이 나서 짜증이난 다고 말하는 건데...'


뭐 이런 대화를 반복하다 보면 슬그머니 진짜 감정이 나타난다.


오늘 나는 짜증이 났다. 물에 젖은 빵처럼 축 늘어지고 해가 늘어지는 오후 그림자처럼 우울한 감정이 내 발목을 잡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 월요일이면 다행이다. 월요일이란 핑계를 댈 수 있으니까. 이렇게 기분이 울적할 때, 두 가지로 대처할 수 있다. 


일 번. 난 왜 우울하고 난리야.. 짜증 나.. 기분이 안 좋아서 짜증 나

이번. 월요일이라서 그런가 봐. 

삼 번. 나 오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네? 왜지? 왜 안 좋을까? 


일 번의 상태로 계속 맴돌다 보면 하루 종일을 망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날로 끝난다. 거기서 조금 나아간다면 이번. 월요일이라서 그런가? 나름의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이건 회피다. 제대로 나를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다. 감정에 미숙한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일 번과 이번을 맴돌다가 탄수화물이 주는 기쁨과 희열을 향해 폭식으로 이어지거나, 보고 나면 더 침전되는 남의 화려한 SNS를 들여다본다거나, 의미 없이 손가락을 넘기며 유튜브 쇼츠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럴 때 한발 더 나아가 삼 번으로 걸어가 보자. 월요일 때문일 리만은 없어. 난 왜 기분이 좋지 않을까, 감정을 해부해 보기로 하는 거다. 취향에 맞는 상상을 더해준다면 조금 더 재밌을 것이다. 


차가운 쇠 침대에 내 뱃속에 막 나온 따끈따끈한 감정을 올려두면 파스스하고 열이 식는 게 보인다. 그리고 드라마에서처럼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메스'를 요청해 날카롭게 갈아본다. 그리고 감정을 요리조리 살펴보자. 짜증으로 뭉쳐져 있던 감정에서 톡 튀어나온 한줄기 감정을 메스로 건져내 보면 '실망'이다. 오늘따라 내 원고의 코너가 방송이 재미가 없어서 실망스러웠다의 '실망'. 또 유독 움푹 파인 곳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건져 올린다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내가 노력을 덜 했나 하는 '자책감'이 보풀처럼 건져 올려진다. 


너무 차가운 상상이었다면, 따뜻하게 가보자. 뜨거운 모래사장 위에 모래성처럼 내 감정이 쌓여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면서 모래성의 모래를 툭툭 건드려 무너뜨려 보자. 툭 건드려 쓰러지는 모래성 안엔 후회라는 감정이 모습을 드러내고 또 툭 건드리면 자책과 실망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나면 '아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기분이 안 좋구나' 인정해 주자 


오늘 나는 짜증이 났다. 조금 더 뜯어보자면. 


'.. 짜증 나는 게... 열심히 하긴 했는데 제가 봐도 좀 재미가 없기도 했고.. 아 왜 재미없게 했지 싶어서 짜증이....' 그렇다 여기서 맨 마지막 짜증은 '실망, 아쉬움, 자책'으로 풀 수 있다. 재밌게 하지 못한 아쉬움. '그래서... 팀 사람들 앞에서 오늘 좀 짜증... 아니, '민망'했어요.'


내가 준비한 코너가 생각보다 재미없게 온에어 돼서 실망스럽고 아쉽고 민망하고 무안했다. 


내 마음과 기분을 탐사하는데 익숙해지자.  잠수함이 깊은 심해를 탐사하며 저게 뭐지?! 외치는 기분으로 물고기 한 마리, 불가사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 알아채 줘야 한다.  왜 기분이 안 좋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별거 아니니까 괜찮다고 토닥여주거나, 그러네 오늘은 정말 우울할만하겠다 공감해주면 된다. 


이렇게 '짜증 속으로' 내 기분 탐사를 마치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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