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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과 의자

캘거리 추억

by 가제트

예전에 캘거리에서 교회에 다닐 때 구역 예배를 끝내고 어린 시절의 교회 다니던 얘기를 하다가

서로의 기억에서 공통점을 찾았는데 그건 마룻바닥에서 예배를 드리던 추억이었다.

지금까지도 10대 혹은 20대 시절의 그런 기억에 남아 있다는 건 사실 불편했던 기억의 잔재 같은 것이다.

마냥 좋았던 유년부 시절의 성탄절 사탕이나 고등부 시절의 새벽송 부르기 등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추억 사이에서 야생 버섯처럼 끈질기게 기생하고 있는 것들. 천막 예배당에서 비가 줄줄 새는 기억, 엉덩이 시렸던 마루와 방석들이 여전히 버티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그런 것들이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즐겁게 그리고 마땅히 그랬어야 하는 것으로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 의자에서 예배를 드릴 때 보다 바루에서 방석을 깔고 예배드릴 때가 더 좋았고 더 경건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어렸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예배드리면 2,3분도 안되어 발을 좌우로 움직이다가 다시 양반다리를 하다가 양 발을 갸름하게 비스듬히 눕히다가 좌우지간 한 가지 자세로 계속 예배를 드린 기억이 별로 없고 오히려 불편한 기억만 남아 있는데 왜 지금은 그때 예배 드리던 모습이 아름답게 치장될까?

지나간 모든 추억은 아름다워서?

좋지 않은 과거는 미화시키는 것이 사람의 본능적인 것이니까?

과거의 아팠던 상처가 현재의 밑거름이 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해당 무.

현재와 과거의 어떤 행태를 비교하면서 과거에서 더 좋은 것을 찾으려는 접근도 해당 무.


우린 서양식 접근 방법에 익숙해져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난 왜 그 당시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방석을 이제는 그리워하는 걸까?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온돌 문화, 구들 문화, 방에서 뒹구는 문화

바로 그것에 대한 향수이다.


우리는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살 때 대부분 아파트에서 생활하였다.

그리고 대부분 침대에서 잠을 잤다.(우리 집은 예외였다. 매일 이부자리 펴고 개고 하였다)

그러나 거실에서 TV를 볼 때면 잠시 소파에 앉았다가도 스르르 내려와서 소파에 기대고 거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TV를 본다.

그리고 그 옆으로 딸들이 슬슬 다가와서 아빠의 배를 베개로 하고 같이 TV를 본다.

가끔 광고에서 식구들이 다 같이 옹기종기 소파에 모여서 TV 보며 손뼉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체로 구라다.

결국 내려와서 엉덩이 깔고 TV 본다.


가끔 찬양팀 저녁 식사를 목사님 댁에서 먹을 때-식탁이 아니라 앉은뱅이책상 2,3개 붙여서 바닥에서 먹는다-한국의 장터 식당에 들어온 것처럼 모두들 환호하는 내면에는 그렇게 엉덩이를 깔고 식사하던 식당이 그리워서였다.

마치 아줌마를 부르는 것처럼 사모님을 불러대고, 몇 번 테이블에 뭐 하나 추가요...

음식 맛도 맛이지만 그런 자리가 주는 추억에 다들 기뻤던 것이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추억이 그날 우리 입과 가슴에서 같이 뛰고 있던 거다.


의자보다 방석이 안락할 수는 없다.

누가 누가 오래 앉아 있나 내기라도 하다면 방석은 백전백패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한국인에게는 안락함보다는 온돌에 대한, 방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게 우리 기억을 건드린 것이다.

안락함은 우릴 익숙하게 한다.

이제는 거실에서 의자를 빼면 그게 더 어색하다.

안방에서 침대를 빼면 잠자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 기억 저 안쪽에서는 아직도 방석을 그리워하고 있다.

온돌에서 같이 뒹굴던 그 추억.

구들장에서 같이 고스톱을 치며 또는 윷을 던지며 살을 비벼대던 그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다.

친구 혹은 친척의 무릎팍과 나의 무릎팍이 자주 접촉하는 그 문화.

윷놀이에서 모가 나오면 앉아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손을 마주치며 환호하는 그 문화.

그건 의자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게 우리다.


한 거실에 열댓 명이 앉아서 떠들고 그리고도 열댓 명이 서서 희희덕 거릴 수 있는 건 한국인만이 할 수 있다.

만약 그 자리에 서양인들이 있었다면 그렇게 오래도록 방바닥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뿐더러 끼리끼리 모여서 마당으로 나갔거나 지하로 잠수했거나 했을 거다.

이민 오면서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

어떤 것들은 아예 기억조차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자주 이렇게 살을 부딪치면서 살아가다 보면 그런 게 살아난다.

그걸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이런 삶이 한국적인 삶이며 이렇게 살아가는 것 역시 사랑이라고...

부대끼면서...


언어만 알려준다고 한국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같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는지 그걸 알려줘야 한다.


지금에 와서 다시 방석을 고집하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이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변화에 이미 익숙해진 몸을 경건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고통스럽게 하는 짓은 멍청한 짓이다.

그럼에도 방석이 머리에서 맴돌며 그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우리 것에 대한 향수.

그리고 그 우리 것이라는 게, 몸과 몸을 부딪치면서 살과 살이 맞닿으면서 생기는 정(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 모처럼 윷놀이 한 판?

아니면 방석 깔고 고스톱?



커버 이미지는 Pixabay로부터 입수된 dyskfirmowy0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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