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재수와 똥파리>

콩트

by 가제트

진작에 눈치를 챘어야 했다.

2년 동안 4개 부서를 옮기고 나서 한 달 전에 5번째 부서 이동 발령을 받았을 때는 나가달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음을 알아챘어야 했다.

한 달을 더 근무한 어제, 대기발령을 받은 그로서는 더 이상 있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바로 사표를 내고 나와 버렸다.

생활비를 아껴 결혼 비용을 장만하려고 입사 이후에도 이 작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4번의 빵 돌리기까지는 버텼지만 결국 5번째에선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죽이려면 일찍 죽일 것이지 5번을 돌려서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그래 이렇게 뺑뺑 돌리니 재미있냐?'


어제, 형식적인 퇴사 기념식을 한 달 동안 같이 근무한 부서원들과 간단하게 1차로 끝내고, 이젠 과장이 된 입사 동기와 또 형식적인 2차를 마무리하고, 혼자 포장마차에서 늦게까지 3차 마무리를 한 터라 11시쯤에 기상한 재수는 빙글빙글 도는 머리를 힘겹게 매트리스에서 일으켜 세우며 늦은 가을의 약간은 차가운 바깥바람을 쐬려고 손을 길게 뻗어 작은 창문을 열었다.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다시 누우려고 하는 차에 윙~ 가을을 타던 왕 똥파리 한 마리가 느닷없이 날라 들어왔다.

재수는 정말 재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이 멍청한 파리란 놈은 하필 먹을 거 하나도 없는 이 좁은 방에 들어와 재수 없게도 재수를 괴롭히느냐고 생각하며 지난여름 그래도 가끔은 요긴하게 사용했던, 책상 위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파리채를 잡았다.

두 발만 걸어도 방 끝까지 갈 수 있고 매트리스에 앉아 손을 좀 길게 뻗어 파리채를 휘두르면 천장도 닿을 수 있는 구조인지라 재수는 매트리스에 앉아 윙윙 거리며 방 안을 맴돌고 있던 파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놈의 첫 번째 착륙지점은 생각했던 대로 책상 위였다.

재수가 책도 보고 밥도 먹던 곳이라 그곳을 놈의 피와 똥으로 더럽힐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재수는 놈이 앉아 있던 바로 옆을 파리채로 탁하고 쳤다.

윙~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놈은 다시 방 안을 날기 시작했다.

'크크크, 넌 오늘 내 손에 죽었어.'

재수는 오늘부터 무직자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한 생물의 생사여탈 권을 쥐고 있는 전지전능의 파리 신(神)이 된 것을 기뻐하며 다시 놈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작은 방이라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맴맴 돌다가 날기에 지쳤는지 이번엔 벽에 걸려 있는 옷 위에 턱 하고 앉아 버렸다.

그것도 제일 비싼 양복 위에...

'어 이놈 봐라, 비싼 건 알아가지고'

'그 비싼 양복을 더럽힐 수는 없는 법!'

재수는 양복의 아래 부분을 쳐서 파리로 하여금 바로 날아가게 만들었다.


그 순간 재수에 머리에 든 생각은 바로!

'그래, 요 놈을 아예 진을 빼버리게 뺑뺑 돌리는 거야.'

파리가 앉기만 하면 바로 옆을 쳐서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게 만드는 잔인한 방법으로 파리를 잡자는 아주 기특한 생각에 재수는 머리를 탁 쳤다.

'나 같은 천재를 몰라 본 회사는 반드시 후회할 거야.ㅋㅋㅋ'

재수는 파리채를 휘두르며 휘파람을 부르기 시작했다.


천장에 앉으면 천장을, 창틀에 앉으면 창문을 그리고 이젠 겁 없이 매트리스에 앉으면 손으로 탁하고 쳐서 파리를 날아다니게 하기를 1시간 경과했을까?

드디어 파리는 방바닥에 앉더니 재수가 아무리 손바닥으로 옆을 쳐도 꼼지락 하기만 할 뿐 날지도, 기지도 못하는 이른바 '차라리 날 죽여주쇼'라고 외치며 백기를 든 상태에 까지 오게 되었다.

그렇게 꼬물거리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재수는 5번 빵 돌리기를 당했던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뭐지 이 기분은?'

이제 놈을 쓰레받기에 담아 창 밖으로 던지기만 하면 되는 이 순간에.....


'그래 이렇게 뺑뺑 돌리니 재미있냐?'

누군가 묻고 있었다.



커버 이미지는 Pixabay로부터 입수된 Peggychoucair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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