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밑줄 긋기-로마인 이야기
아우구스투스는 정치가로서는 카이사르보다 완벽하고 적절한 자질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가 많다. 나중에 역사가 타키투스가 평했듯이, 아우구스투스는 유일한 승자가 된 뒤에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오랜 시간을 들여 한 가지씩 권력을 수중에 넣어 결국 모든 권력을 장악한" 반면, 카이사르는 유일한 승자가 되자마자 당장 종신 독재관에 취임하고 억지로 혁명을 추진한 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이 차이를 첫째는 두 사람의 성격 차이, 둘째는 카이사르가 54세에야 비로소 '혁명'을 시작할 수 있었던 반면에 아우구스투스는 33세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는 연령 차이, 셋째는 카이사르 암살에서 교훈을 얻은 아우구스투스가 절대로 죽음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갖게 된 점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 가지 차이점도 생각해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른바 '귀골'로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다.
카이사르는 왕정 시대 이래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중의 명문 자제로 수도 로마에서 태어났다. 한편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할아버지 대에는 무슨 직업에 종사했는지도 분명치 않고, 지방 소도시 벨레트리의 유지로서 원로원에 들어온 집안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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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가 '귀족계급'(노빌리스) 출신인 반면,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사회에서 제2계급인 '기사계습(에퀴타스)'출신이다. 카이사르와 혈연관계가 있다 해도, 카이사르의 누이동생 율리아의 딸 아티아의 아들이 아우구스투스니까 그리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그런 관계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하면 오히려 웃음을 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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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반 대중을 상대할 때는 역시 '귀골'이 좋다. 카이사르라면 무슨 짓을 하든 민중도 납득했겠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신중하게 일을 추진해야 했다.
이 점에 대한 아우구스투스의 배려는 그 개인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마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눈물겹게 보이기까지 한다.
p88~90
가제트의 밑줄 긋기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차이점을 시오노 나나미는 네 가지로 든다.
성격, 연령, 암살의 교훈 그리고 신분
그리고 그 뒤를 계속 읽어 내려가도 4가지 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전편에 걸쳐 카이사르를 거의 흠모하다시피 할 정도로 대단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네 가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만 한 가지 빠진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처음'과 '계승'이 아닐까 한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없었다면 세종이 없듯이,
김대중 대통령이 없었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없었듯이(이에 대한 견해는 갈릴 수 있겠지만 가제트의 견해는 이렇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차이는 처음을 열었느냐 아니냐의 차이도 있지 않을까?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를 계승한다고 했다.
카이사르는 누구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계획과 방향을 제시하고 스스로 나아간 것이다.
나라를 세운 것과 그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결국 아우구스투스가 팍스 로마나를 열어 나간 황제로 평가되지만 실질적으로 로마를 세운 것은 카이사르라고 생각한다.
그 차이, "개국"과 "계승"의 차이 때문이라도 아우구스투스는 조심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가 먼저 태어났다면 카이사르가 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