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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Sep 28. 2020

난 언제나 너의 자리를 비운채 잠이 든다

일상의 흔적 112

9월 26일, 쌀쌀한 공기 따사로운 햇빛. 넌 오늘 같은 날씨를 좋아했다.

창문 넘어 밝은 햇살이 스며든다. 알람 없이 푹 자고 일어난 아침은 뿌듯한 마음을 들게 한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약간은 서늘한 공기와 대비되는 따뜻한 햇살, 이런 날엔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집 막내가 떠오른다. 누구를 닮았는지 유난히 추위를 타면서도 서늘한 가을을 좋아하던 너, 이렇게 햇볕이 따뜻한 가을날 유난히 신나 하던 네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눈을 뜬진 오래지만 아직도 침대에 누워 멍하니 창밖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내 옆자리를 본다. 언제부터였을까, 유난히 내 옆구리에 붙어 자는 걸 좋아하는 널 위해 난 항상 벽에 붙어 잠을 잤었다. 혹여나 내 뒤척임에 네가 깨어날까 봐, 혹여나 내 잠버릇이 네 몸을 누르게 될까 봐 벽에 등을 붙이고 네게 품을 내어줬다.


자그마치 9년의 세월을 그랬다. 9년뿐이었을까, 잠깐씩 집에 내려올 때도 여전히 침대 밑에서 날 올려보는 네 눈을 바라보고 웃음을 짓곤 했다. 무더운 여름에도 손끝이 시린 겨울에도 네 덕분에 잘 때만큼은 옆구리가 늘 따뜻했다. 벽에 붙은 등에 딱딱함이 느껴져도 너와 함께 잠이 드는 그 순간이 나에겐 행복이자 진정한 휴식이었다.


그 오랜 습관은 여전히 날 잘 때만큼은 벽에 등을 붙이게 만든다. 내 옆에서 자던 네가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네 자릴 비운채 잠이 들고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나며 뒤척이는 내 움직임에 얼른 눈을 뜨고 얼굴을 맞대던 넌 이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은 기대감으로 눈을 뜬다. 그 기대감이 무너질 때마다 내 마음도 무너졌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은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옅은 기대감으로 눈을 뜨던 아침도, 이젠 어느 정도 무감각해지고 있다. 여전히 옆자리를 비워둔 채 벽에 붙어 자고 있지만 이 습관도 점점 무뎌질 것이다. 언젠가 내 등이 벽에서 떨어지고 침대에 온전히 몸을 눕게 될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습관이 무뎌지고 없어진다고 해도 내가 널 잊는 순간이 오진 않을 거다. 한때 혹시나 무지개다리 넘어 나를 기다리던 네가 이런 내 모습에 실망을 할까 걱정하던 순간도 있었다.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너를 잊어간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자기 전 네 사진을 하염없이 보며 잠들던 날들도 있었다.


꿈에서 널 다시 만나던 날, 내 주위를 뛰어다니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널 보며 난 그냥 울었다. 평소에 잘 놀아주지 못하는 내가 꿈에서는 너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서러웠다. 왜 나는 해줄 수 있을 땐 해주지 않고 잃고서야 이런 마음이 든 걸까.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을 뜨고는 차가운 현실에 다시 눈물이 흘렀었다.


비어있는 내 옆자리가 쓸쓸하고 식어버린 내 옆구리에 지나는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울었었다. 울면서 깨어나던 날들을 뒤로하고 이젠 좋은 생각을 하기로 했다. 내 걱정에 꿈속을 오가며 나를 위로하고 있었던 너를 생각하며 이젠 행복해 보이는 네 얼굴을 마주 보고 웃어주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꿈에 잘 나와주지 않지만 혹시나 만날 너를 기대하며 잠이 든다.


난 여전히 네 자리를 비운채 잠이 든다. 여전히 내 등은 딱딱한 벽에 기대어 있고 내 손은 언제 올지 모르는 널 반기기 위해 뻗어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걸 좋아하는 널 위해 난 아직도 네 자리를 보며 잠이 든다. 잠이 들기 전까진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침에 눈을 뜨면 여전히 벽에 등이 닿아있다.


언젠가 한 번쯤 다시 내 곁에 닿은 네 온기를 느끼고 싶다. 아직은 그 온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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