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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ug 26. 2020

나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까

일상의 흔적 111

8월 23일, 개운하게 맑은 날씨.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다.

첫 출근 후 맞은 첫 번째 주말, 하루는 푹 쉬었지만 일요일까지 집에만 있기는 아까웠다. 한참을 뒹굴거리다 마침 꼬부기가 제주에 내려와 있어서 슬쩍 불러냈다. 살짝 홀쭉해져서 걱정이던 볼이 먹느라 볼록볼록 통통하다. 아직도 내 눈엔 지옥 같은 미술 입시 때 울던 꼬맹이로 보여서 늘 눈에 밟힌다. 소스까지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긁어먹는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하다.


충분히 양에 느긋한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짧은 다리로 총총총 커피를 가져오는 걸 보니 괜히 웃기다. 귀여운 우리 꼬부기. 흐뭇한 엄마미소를 입꼬리에 걸고 우쭈쭈를 시전 했다. 코로나로 학원이 문을 닫고 내려온 제주지만 잠깐일 테니 그동안은 마음도 몸도 편하게 머물렀으면 좋겠다며 지금의 휴식을 잘 즐기길 바란다고 토닥였다.


씁쓸하게 웃던 꼬부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물방울이 맺힌 컵을 만지작거리던 꼬부기가 슬쩍 말을 꺼낸다. 사실 제주로 내려와 한동안 아팠고, 병원도 가보고 지금은 약도 먹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도 담담하게 웃었다. 슬퍼하는지 그래서 아픈지 아님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도 아직 본인이 어떤 감정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순간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지면서 어지러웠다고 했다. 배는 고프지만 목으로는 넘길 수 없는 상태가 며칠 이어졌고 결국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그날, 유난히 집으로 들어가기 싫었다고 한다. 그대로 아무 버스나 탔고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이 나오자 어딘지도 모르고 내려 발길을 이끄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고 했다.


주변이 어둑해지고 버스가 끊길 것 같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걷는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고, 그렇게 내린 결론이 화병, 마음의 병이었다. 내 마음에 있는 아프고 답답한 이 감정이 화병이라고 인지한 그 순간 비로소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서야 마음속 상처 받은 나 자신을 마주 봤고 인정하고 나서야 제대로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어느 정도 꼬부기의 마음에 상처가 깊어지는 걸 알고 있었다. 꼬부기와는 지금처럼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어떤 문제든 꾹꾹 누르는 꼬부기의 모습을 떠올리면 언젠가 터질 일이었다. 오히려 다행인 건 지금이라도 본인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챙겨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점이다. 올망 울망한 눈으로 나를 보며 달라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착한 아이, 잘 이해해주는 아이, 잘 견디는 아이, 알아서 잘 큰 아이라고 꼬부기를 정의한다. 억지로 틀 안에 가두진 않았지만 이런 것에 무던해지고 익숙하도록 만든 사람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처음 볼 때도 그랬다. 자신이 힘든 것도 아픈 것도 포기하고 싶다고 말이라도 하고 싶을 것 같은 순간에도 그저 웃었다. 눈 한번 비비고 머리 한번 털고 기지개를 켜며 그저 웃고 넘겼다.


하지만 결국 울음이 단단하게 감춘 마음에서 스며들어 나올 때도 있다. 꾹꾹 누르던 눈물이 방울이 되어 흘러내리는 걸 볼 때면 저 작은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갖고 있을지 먹먹해진다. 오늘같이 꽁꽁 막아둔 속마음이 나올 때면 조용히 들어주는 것 밖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꼬부기는 두서없이 말을 했다. 먼 과거와 멀지 않은 과거가 섞이고 다시 현재가 섞이고 서러웠던 모든 일이 섞여 감정이 커지고 넘쳤다.


"나는 내가 지금 힘들어도 나를 깎고 쪼아서 결과물을 꼭 내야 할 것 같았어. 하루의 끝은 지쳐 쓰러져 잠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언니. 내가 편하면 안 된다고, 근데... 나 안 그래도 되잖아. 하고 싶지 않으면 화나면 화내도 되고 이건 아니라고 얘기해도 되고 그렇지? 나 너무 어렵게 외롭게 살지 않아도 되잖아. 나 그때 서운했고 화도 났고 눈물도 났어. 근데 제일 어이없는 건 지금까지 몰랐다는 거야. 내 마음이 어떤지. 왜 난 스스로를 아끼지 않았을까 언니. 난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난 스스로에게 소중한 사람인 걸까..."


울기 싫어 끊임없이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는 꼬부기를 위해 잠시 시선을 돌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멀리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위로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짐작조차 되지 않는 너무 아프고 깊은 상처를 감히 건들 수 없었다. 흔들리는 눈망울이 다시 잔잔해질 때까지 그저 그냥 앞에 앉아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세상을 깨고 큰 세상을 만나고 나서야 꼬부기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내 삶에 중심을 찾고 나에게 소중한 '나'를 되찾아줬다. 스스로를 숨기고 눌러오던 기간이 워낙 길어 한번에 좋아지진 못하지만, 스스로 억울하고 서러웠던 순간을 토하며 화를 표출하고 난 꼬부기의 얼굴이 한결 편해 보인다.


아마 처음으로 스스로를 안아줬던 이 한걸음이 얼마나 소중한 시작인지 꼬부기는 알까. 부디 이 걸음이 멈추지 않고 나아가길, 행복하고 소중한 꼬부기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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