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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06. 2020

심란한 마음에 뒤척이던 새벽 2시

일상의 흔적 113

10월 5일, 제법 가을 티 나는 쌀쌀한 바람. 심란한 새벽 공기에 잠이 오지 않는 새벽 2시

심란한 하루였다. 오전만 잠깐 출근하고 쉬기로 한 날이기에 기분은 좋았지만 그 기분이 저 밑 심연까지 가라앉을 일이 생겼다. 그 일은 밤늦도록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창문 틈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다. 사실 달빛인지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인지 모르겠다. 어른어른 거리는 불빛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하루의 끝에서 다시 시작됐다. 새벽 두 시, 감성으로 가득해진다는 마성의 시간, 지금은 오직 심란으로만 가득하다.


왜 나는 이 늦은 새벽까지 잠 못 이루고 있을까. 나는 내가 생각이 아주 단순하고 걱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늘 결정은 빠른 편이고 후회는 했지만 그 역시 짧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정 후엔 순응하며 책임을 지고 살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대단히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지만 나서지 않는 편이고 감정에 동조해 분노하지만 적당한 선을 지킬 줄 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아픔은 토닥이지만 내 일은 아니야, 난 냉정한 편이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나를 겪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른다. 난 단순하다기 보단 생각을 꾹꾹 눌러 마음속 깊이 밀어 넣는 사람이고 대단한 정의감은 없지만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오늘 같은 회사 동료 두 분이 해고됐다. 큰 이유는 없었다. 회사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였지만 어설픈 핑계란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우리 모두 을이니까.


을이기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음에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마음을 눌렀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카페에 앉아 달달한 음료와 회사를 잘근잘근 욕하는 것밖에 없었다. 텅 빈 미소와 함께 결국 눈물을 흘리는 동료를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정말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을까? 회사에서 곤란했던 상황이 분명 있었다. 그때 도와줄 수 있었지 않았나, 바쁘다는 핑계로 나도 그분들을 외면했던 순간이 있었나... 어깨를 토닥이고 싶었지만 닿지 못했다, 닿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난 을이고 수습도 떼지 못했고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는 조직도 맨 끝이다. 이런 마음과 별개로 마음 한구석을 뒤흔드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쉽게 생각하고 회사에서 군림하고 싶어 하는 대표 밑에서 더러워도 다녀야 하는 지금 내 상황이 더러워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이 마음이 더 나를 심란하게 했다. 나만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마음도 몸도 무겁다.


대표가 직원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쯤은 알았다. 단편적인 모습에 그 사람을 다 알지 못하지만 강하게 풍겨오는 느낌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다. 그런 모습에 일찌감치 내 일을 잘하기만 하면 될 뿐이라며 등 돌리고 주어진 일에만 열심히였다. 그러나 묵묵히 일하던 분들도 시답지 않은 이유로 ( 실질적인 이유는 대표가 그 직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라는 걸 모두 알고 있는) 해고 통보를 받는 걸 보고 나니 회의감이 짙게 든다.


언제 해고 통보를 받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부터 내가 이곳에 있는 게 맞나라는 물음표가 머리를 떠돌아다녔다. 직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이곳에서 내가 과연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할 수 있을까. 심란한 마음에 바스락거리는 이불속을 계속해서 헤엄쳤다. 심연처럼 가라앉은 내 마음을 다독이고 위로 올라오고 싶었지만 끝없이 밑으로만 가라앉는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이다.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고 각자의 회사에서 지쳐있을 친구들에게도 더 이상 나쁜 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과는 좋은 얘기만 즐거운 이야기로 웃고 싶었으니까. 그저 익명이란 이름으로 울타리를 만들어놓은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마음속 이야기.


심연에 가라앉은 채 어른거리는 불빛만이 반짝이는 짙은 새벽. 다시 잠을 청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도 출근해야 하고 일은 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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