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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12. 2020

사랑 때문이라는 핑계를 외쳐보고 싶다

일상의 흔적 114

10월 11일, 청량한 가을 하늘. 사랑을 할 땐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

아침부터 날씨가 좋았다. 매주 한 번씩 다니는 운동 때문에 일찍 눈을 떴지만 푸른 하늘과 서늘한 공기가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이리저리 그동안 막 굴렸던 몸한테 미안해서 운동을 다니고 있는데 점차 나아진다는 말에 의욕이 솟아오른다. 게다가 센터 바로 옆에 좋아하는 베이커리 카페까지 자리 잡고 있어서 운동 후 먹을 빵을 생각하며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움직였다.


별다른 약속도 없는 한가한 일요일의 오후, 이 포근한 시간이 주는 느낌이 좋다. 이런 날은 작고 아담하지만 조용한 동네 카페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딱이다. 작은 노트북 하나만을 들고 아지트로 향했다. 평소엔 마시지도 않는 아메리카노까지 시켜놓고 영화를 재생했다. '라스트 크리스마스' 이 영화는 아메리카노처럼 씁쓸하지만 은은한 여운을 준다.


영화가 끝나고도 카페를 떠나기 싫어서 혀가 아릴 정도로 단 커피를 시켜놓고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 이번 주는 유난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걸 두고 올인하는 사람과도, 현재 예쁜 사랑을 하는 사람과도, 사랑의 결과라고 말하는 결혼을 한 사람과도 각자가 품고 있는 사랑에 대해 이래저래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각자가 말하는 사랑의 형태는 다르지만 공통적인 이야기는 사랑 때문에 웃고 사랑 때문에 울고 때론 사랑에 기대 위로받고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는 것. 물론 그들의 모든 이야기와 감정에 공감하진 못하지만 문득 한 번쯤은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그동안 내가 했던 사랑에 대해서도 돌아볼 기회가 됐다.


생각해보니 사랑 때문에 웃어봤지만 울어보진 않았다. 원래 잘 울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 사람 때문에 힘들거나 울 정도의 감정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크게 화를 내본 적도 없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 탓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기 때문에 화내고 실망할 이유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화를 내거나 실망을 느꼈다면 그건 이제 헤어지는 순간이다.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바를 표출하거나 나에게 맞춰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나로 인해 크게 변화하거나 나와 비슷해지는 게 달갑지 않았다. 서로의 삶이 달랐던 만큼 자라온 모양도 다른데 굳이 그걸 끼워 맞춰야 하나 싶었다. 서로의 다른 점 때문에 실망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점 때문에 갈등한 적도 별로 없다. 그저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에서 끝났다.


이런 내 태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심하다는 말을 끌어냈다. 친구들은 내 이런 태도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짧아 아쉽고 하루 종일 보고도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시 보고 싶은 그런 사랑이 아니었기에 그렇다고 했다. 그 사람이 곁에 없는 하루가 너무 길고 눈만 돌려도 어디서든 그 사람이 생각나는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밋밋해 보이는 내 사랑이 어딘가 부족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난 그저 이런 담백한 형태가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감정적으로 크게 요동치거나 내 성격이나 가치관을 흔들 만큼의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조금은 버거웠던 게 아닐까. (혹은 정말 나도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사랑을 만나면 이런 모든 생각들을 버리게 될까.)


물론 한 번쯤은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긴 하다. 매일매일 그 사람이 보고 싶고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고 이런저런 핑계 삼아 연락도 해보고 어떻게든 오래 있을 핑계를 만들어 밤늦은 시간까지 그 사람 옆에 붙어있고 싶은 그런 사랑. 뭐 언제쯤은, 그런 사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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