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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Oct 21. 2020

나는 사랑하고 싶은 좋은 사람일까

일상의 흔적 115

10월 17일, 눈물 나게 예쁜 하늘과 바다. 언니가 제주도를 와줬다.

별거 아닌 문제로 엄마와 다투고 기분이 우울한 날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원래 무심하고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성격임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엄마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나 보다. 그러던 중 정 언니가 연락이 왔다. 제주 여행을 고민하던 언니는 '언니 저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내 한마디에 '그래, 제주도 갈게' 더 고민 없이 제주행을 결정했다.


고마웠다. 언니도 힐링이 필요하다며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1박 2일 모든 일정을 함께하자는 언니의 말이 든든했다. 금요일까지 비가 세차게 와서 걱정을 시키더니 언니가 오는 날엔 거짓말처럼 맑았다. 요즘 이렇게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햇볕을 쬐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가 눈물 나게 예뻤다. 우린 바다 인근의 작은 카페에 앉아 멍하니 파도소리를 즐겼다.


성향이나 상황이 비슷하기에 공감대가 많은 언니는 가장 친한 친구, 심지어 엄마에게도 밑바닥에 있는 모든 마음을 보이기 싫어하는 내 성격 등 늘 많은 것을 품어준다. 때론 너무 스님 같은 말을 해서 외면할 때도 있지만 언니가 해주는 말이나 가만히 들어주는 그 순간의 공기가 반가울 때가 있다. 하나둘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에 두서없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못 보고 지났던 날들을 보상하듯 우린 자잘한 것부터 큰 사건까지 모든 말들을 나눴다. 물론 서로에 대한 해답은 없다. 그저 '그랬었다'는 일상만을 마음껏 나누고 해결이 아닌 서로의 생각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지나온 일상에 대해 말하다 보니 언니와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언니는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본인이 아닌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나 또한 그 사람이 사랑할만한 좋은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그 사람이 안타깝다고 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도 있지만 언닌 충분히 좋은 사람인데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도 놀라웠다. 생각해보니 난 한 번도 스스로가 만나기 좋은 사람인지, 사랑할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의 전부가 될 수 없다고, 되고 싶지 않다고 여겼었다. 타인은 그저 타인일 뿐이며 그 사람의 아주 소중한 일부는 될 수 있지만 전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전부가 되는 건 내 삶의 가치관에 있어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만큼 그 사람이 원하는 부분을 들어주고 맞춰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서로의 소중한 일부에서 더 확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 언니 말을 들어보니 난 그동안 아주 이기적인 연애만을 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어놓은 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없이 그저 내 일부만을 상대방과 공유하며 내 전부인 것처럼 굴진 않았는지 반성했다. 그 사람의 좋은 면과 사랑스러운 면을 발견하고 그 부분을 더 크게 보려는 노력은 했었나, 나는 그 사람이 사랑할만한 멋지고 좋은 사람이었나. 내가 만든 작은 우물 속에서 상대방이 그저 밝은 달이 되어 주기만을 바라진 않았나.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따라 짙어지는 파도를 멍하니 바라봤다.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과연 나도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까. 고민에 빠진 내 얼굴을 보던 언니는 사랑에 대한 자격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누구나 사람을 마음에 품는 건 할 수 있지만 과연 나는 상대방이 바라던 좋은 사람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모두 느낄 텐데, 그 마음 그대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를 사랑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스스로도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누군가가 사랑해주기만을 바라는 게 문득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사랑하고 싶은 좋은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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